우리 소설 다섯을 골랐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다들 말했던, 그래서 잘 알려진, 그런 소설은 가급적 뺐다. 소장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책장을 쓰윽 훑어보고,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따라 다섯권을 뽑는다.

1. 헤르메스의 기둥 – 송대방/문학동네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성모”라는 그림을 주제로한 모험담. 이라고 하면 인디아나존스처럼 들릴라나?

작가는 이책을 “부모님과 파르미지아니노, 그리고 전세계 프리메이슨 회원”에게 바친다고 했다. 짐작하셨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세시대에 이미 연금술의 비밀을 발견한 “헤르메스”라는 인물이 신화속으로 숨어들고, 자신이 발견한 연금술의 비밀을 어떤 기둥에 숨겨놓았는지 알게된다.

그리고, 그 헤르메스는 아직도 살아 있음과, 현대의 한국유학생이 이런 일들에 실감나게 얽히는 광경도 목격하게 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예수는 죽지 않고, 아리마테아의 부자요셉과 함께 유럽으로 넘어왔다는 것인데…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진짜로 우리나라사람이 쓴 것이 맞는지 몇번이나 의심했었다. 유럽의 미술과 종교, 그리고, 음모론들에 대해서 이렇게 잘 연구한 사람이 또 있을까. 흥미진진한 며칠밤을 위해서라면, 또, 음모론의 대가가 되고 싶다면, 두권합쳐 700여페이지인 이 소설을 권한다.

2. 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문학과지성사

역시 두권합쳐 700페이지정도 되는 소설이지만, 이 책을 다 읽는 것은 일종의 고행이다. 진짜로 “연구”를 진지하게 수행한 어떤이가 쓴 결과보고서 같은 것으로써, 처음 시작하는 11개의 행과, 8개의 쉼표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을 만나면,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낄수 있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덞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자, 이 문장을 보고서 뭔가 움찔한 것을 느꼈다면 주문(오더..)을 때려보자. 그리고, 수도하는 마음으로 석달만 참고 읽어보자.

아마 백페이지쯤인가.. 까지도, 나는 이책에 줄거리가 있을 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줄거리 없는, 무의미한 독백에 가깝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다 읽은지 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으니까, 어떤 내용이냐고 묻지는 마시라.

“그런데 말입지, 마근을 대상으로 할 때엔, 자기의 일부로서의 마근은 말입지, 썩 좋은 대상은 아니더군입지. 글쎄 좀 들어주십지, 자기의 마근을 삼자로 놓고 말입지, 바라보기 시작한 때부터입지, 헷헷헷, 항문이 말입지, 가렵기 시작터라 이 말입지.”
그래서 내가 그의 항문을 보았더니, 그것은 치질을 비죽 내물고 방심한 듯이 그 안쪽을 조금 열어보이고 있는데, 거기서도 불빛은 번쩍거리고 있어서, 내가 유리로 왔던 첫밤에, 저 거적문이 들쳐지며 잠깐 보였던, 그 불빛을 아스라이 떠올렸다. 나는 그때 문에의 유혹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기억이 맞다면, 박상륭선생은 “삶의 연구는 많이 하고 있으니, 내가 해야 할것은 죽음의 연구가 아니었나.” 라고도 했던 같습… 쩝.

3.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한겨레신문사

1982년까지는 부산에서 일본방송이 잡혔었다. 그게 꼭, 좋았다고까지 말하기는 뭣한 일이지만, 중학생이던 내 친구같은 후배는 덕분에 “건담”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건담시리즈를 한참 보고있던 후배이자 친구인 녀석은 갑자기 방해전파로 인해서 자~알 보고있던 건담이 싸악 사라지고, 전대통령께서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 순방을 떠나는 모습이 화면에 떠오르던 그 순간을, 서른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친구는 그래서,

전두환을 싫어한다.

아쉽게도 – 전대통령은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 순방을 마친 후, 무사히 귀국한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던 우리로써는 일본방송 따위를 봐서는 안되는 것이었겠지만, 까짓, 어차피, 그때 TV에서 보여주던 만화중에 스머프 빼고는 다 그나라에서 만든것 아니었나? 아.. 얼마전부터 MTV에서 쓰리나인을 해주던데.. 암튼.

재미있다.

4. 비명을 찾아서 – 복거일/문학과지성사

대체 역사 소설 이라고 하던데.. 그, 로스트메모리즈.. 라고 지루하던 영화의 원작은 사실 소설이었다. 소설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원작이 아니라.. 모티브만 따왔다고 했던가..)

소설속의 역사에 의하면,

이또히로부미를 향한 저격이 살해가 아닌, 부상으로 끝났다. 일본은 아직 망하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속국으로써, 내지(일본)보다 하등하다고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상태이다. 우연히 한글로 된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한 주인공은 원래는 우리말이 있었고, 우리의 글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라진 우리말을 대체하는 단어들이 기억난다. 젤라도오.. 였던가. 전라도는 없어지고, 젤라도오만이 남아있는 가상의 현실따위를 너무 생생하게 그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헌책속에 남아있는 우리말 몇줄이 주었던 감동도.

5. 서커스서커스 – 최인석/책세상

우렁각시는 사람으로 변하는 재주가 있는데, 이를 알게된 장꾼은 우렁각시를 이용하여 서커스를 시작한다…


최근에 읽었던 우리소설중에 제일 상상력이 뛰어났던 작가가 아닐까. 물론, 단순히 좋은 상상력만은 아니고, 뭔가 심각한 고민도 들어있다. 책의 표지에 올라와 있는 작가의 사진도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다.

소설에서 채팅하는 장면이 나오면, 뭔가 어색한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여기서는 구겨진 우화가 자연스러운 것 만큼, 채팅장면도 자연스럽다. 마지막 장면의 안타까움도 기억난다.

TOP 5 LIST 를 제목으로 하지 않고, “읽어봐도 되는 우리 소설 다섯”이라고 길게 써주었다. 좀 현학적으로 보이지만, 그냥 두자.

 

One Comment

  1. 빨강머리앤 September 17, 2003 at 2:11 am

    3권 읽었습니다..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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