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님의 백수가 .. 라고 합니다.

조용.. 조용.. 하고.. 한줄한줄 따라서 읽어보세요..

그대여,
오늘 하루도 잘,
뒹굴
뒹굴
하였는가.
봄날의 곰처럼
정오의 공작처럼
빈둥
빈둥

오, 아름다운 그대의 삶.
그대의 부모는
그대를 보고 말할 것이다.
“자~알 한다..”
“자~알 하는 짓이다.”라고

아아.
나 역시 그대를 보고 말하나니
그대여 자~알 한다.
정말이지
자~알 하는 짓이다.
자~알 살고 있는 그대가
오늘도 나에게 물어왔다.
도대체 할 일이 없다고,
도무지
뭘 하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그대는 나에게 물어왔다.
그렇다 그대여.
지금 그대에게 할 일이 없다.
세상엔 정말이지
그대가 할 만한 일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듯하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그대가 지금 잘 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느 기업인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거창한 말을 외쳤지만
뭐, 할 일이 그렇게도 많다면
많이들 하라 그러고,
오늘은 그대와 나
세계가 아무리 넓어도
도무지 할 일 없는 인간들끼리
뒹굴 뒹굴
빈둥빈둥
방바닥이나 문질러 보자.

그대여.
그대는 지금 멋지게 살고 있다.
그대의 삶은 지극히 정상이며,
지금 이 시기야말로
젊은 날 반드시 거쳐야 할
황금의 터널이니,
나는 그대가
진실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렇다 그대여.
백수가 아닌 젊음은
젊음이 아니다.
진실로 진실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나니,
아무런 주저 없이
그저 돈이나 벌기 위해
취직부터 하고 보는 젊음이야말로,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몰가치한 삶인가.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많지만
무릇 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에 불과하다.
그것이 직업이다.
자신의 직업, 귀하고 올바른 직업을 찾는데는
비록 평생을 바친다한들 아까운 일이 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직업을 통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대의 직업을 통해
그대의 삶,
그대 가족의 삶을 영위해야 함은 물론,
나아가 타인의 삶 역시
이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대의 직업은
늘 가슴 뛰고,
하면 할수록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진정으로 그대는
그대의 직업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대여.
직업을 찾는다는 것을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 걸어가야 할 길을
오늘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쉽게,
너무나 간편하게
결정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한다.
일찍 취직을 했을수록,
크고 끗발 좋은 직장에 합격했을수록
그들의 어깨엔 힘이 들어가고
그들의 시각은
마비되어 버린다.
그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그런 것이며,
그들의 삶 역시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 식으로 직업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 외에는 다른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젊고,
싱싱한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에 마비되지 않은
진지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것이다.
그리고 다만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그대가 무능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는 지금 그대의 길을 찾고 있는 중이며,
저 널려 있는
천한 직업의 지뢰밭을 통과해
귀하고 귀한
그대의 직업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깨어 있는 젊음,
경건한 젊음을 지닌 이로서
지극히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그대여.
직업엔 분명 귀천이 있다.
물론 빌어먹을 세상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귀한 직업으로.
돈을 못 버는 직업을
천한 직업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실로 천한 직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직업,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직업이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천한 직업들을 보아왔다.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가들,
뇌물로 돈을 모은 공무원들,
남의 재산을 탐하는 범죄자들,
아랫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직장의 간부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이는 모두 천한 직업이다.
분명 이들은 직업을 잘못 선택했으며,
직업을 잘못 선택한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망치는 주범들이다.

나는 그대가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꼬봉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망치는 일에 일조하는 이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대는 여지껏
참고 기다려 왔으며,
이제 잠시 후면
반드시 자신의 역량을 걸맞는
귀하고 귀한 직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늦어도
부끄럽지 않는 것.
늦고 늦을수록 그 쓰임이 크고 너그러워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그런 귀한 직업에 종사하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대여.
귀한 직업을 가진 삶,
또 그 직업에 평생을 바친 이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리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날로 연마하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이의 삶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렇다 그대여.
누가 백수를 무직이라 했는가.
백수야말로 직업선택업이라는
귀하고 귀한 젊음의 직업이니
보라.

그대의 이름은 백수,
백수는 프로보다 아름답다.


저위에..

그저 돈이나 벌기 위해
취직부터 하고 보는 젊음이야말로,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몰가치한 삶인가.

라는 부분이 저를 때립니다. 아얏.

물론, 처음부터.. 조용..조용.. 따라 읽어보면.. 더 좋습니다.

 

4 Comments

  1. 구녕이 September 19, 2003 at 3:38 am

    전 지금 가슴이 찢어질듯 아픕니다. (ㅠㅠ)v 이제는 아무데나 취업해서 아무 일이라도 해야할지 정말 고민이네요. 아~~~ 슬퍼요. (^^)v

    사실 정말 재밌는 글이네요. 가슴에 팍팍 와닿습니다.

     
  2. jinto September 19, 2003 at 6:27 am

    이걸 읽은 여동생의 반응 : 아무데나 취직해서 꼬붕이 되어 살앗!!

     
  3. luke September 21, 2003 at 12:27 pm

    TV를 얼핏 보니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프로가 있더군요. 노는 것도 일이에요. 하하하

     
  4. 박제권 September 21, 2003 at 4:03 pm

    맞습니다. 오늘도 로베르 브레송.. 이라는 아저씨의 음울한 영화를 보고 왔어요. 아마, 조만간 승마수업을 들으러 갈지도 몰라요.
    노는것. 일입니다.

    아마, 올해 말부터 소목공예를 배워서, 내년말에는 진정한 직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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