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추리에 대해서..

비변사에는 더이상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조선왕조실록에는 등장하는데..

광해 019 01/08/25(계유) / 용인에 사는 향화인들의 횡포에 대한 이주책을 비변사가 건의하다.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경기 감사 김신원(金信元)의 첩정(牒呈)을 보니 ‘용인(龍仁)에 거주하는 향화인(向化人) 박길상(朴吉祥) 등 10여 호의 남녀 합계 80여 명이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 길가에 거주해 살아온 것이 이제까지 7, 8년입니다.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고가는 곳인데, 길상 등이 수하 16, 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山行)을 한다고 칭하면서, 어떤 자는 말을 타고 어떤 자는 걸으며 혹 활과 화살을 들거나 혹 장검과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하였는데, 이렇게 한 것이 지난 봄부터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읍내의 원전(元田)을 이유없이 뺏어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벼곡식을 공공연히 베어가며, 수많은 우마(牛馬)를 멋대로 놓아서 기릅니다. 백성들의 고발장에 따라 매번 차인(差人)을 보내 부르면, 문득 관차(官差)를 구타하여 손을 쓸 수 없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나무하고 소먹이는 촌사람들조차 감히 혼자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시골의 도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 우려되니, 후환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본 고을의 향화인이 부리는 폐단이 점차 만연하여 매우 걱정스러우니, 미리 선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양호(兩湖)의 가까운 곳에 옮겨 각 고을에 나누어 둠으로써 무리를 지어 횡행하지 못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향화 호인(向化胡人)들이 내지에 뒤섞여 있어 끝내 점차 세력이 커지는 걱정은 예로부터 있었다. 이제 마땅히 멀리 떨어진 절도(絶島)에 나누어 두어 진압하기 어려운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기 근처에 살고 있는 종족은 점차로 딴 곳으로 옮기라.”

하였다.

이런 사건으로 하여, 광해 108 08/10/17(갑인) / 금부 죄인 마부대·박길상 등을 위리 안치하다

금부 죄인 마부대(馬夫大)는 거제(巨濟)에, 박길상(朴吉尙)은 남해(南海)에, 억례(億禮)는 제주(濟州)에, 박여적(朴汝赤)은 진도(珍島)에, 거추리(巨里)는 백령도(白翎島)에 위리 안치할 일을 계하하였다.

【원전】 32 집 524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그럼.. 거추리는… 백령도에 간겨? 불쌍하자나.. 여자혼자가서.. 어찌 살라고??

도적질하는 남편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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