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3까지 보고나서는 1편이 주었던 그럴싸~함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책은 1편을 보고나서 샀더랬습니다.

한참동안 표지만 보고 지나치다가, 서점에서 십분정도 서서 읽고, 그리고, 샀습니다. 쓸데없는 책이면 어쩌나.. 했는데, 뭐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에 링1,2,3 를 다 보고 나서 ‘천재!’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매트릭스니, 에바니, 공각기동대니, 일본은 어째서 이런 것을 잘 만드는건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는 서양인들의 잘났음을 느꼈습니다.

1. 서양

영화하나가지고 뭐 이렇게 소란인가 싶을 정도로 집필진이 호화롭습니다. 철학자, SF작가, 영화감독, 과학자, 그리고, “vi”를 만드신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빌 조이”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저를 놀라게 한것은. 우리는 그냥 영화로 보고 지나간 것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고있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이 데카르트라던가, 하는 식의 현대를 만들어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그런 자신감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납득가능한 설명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반대로 우리로써는 “따라야할 무조건적인 진리”로써의 서양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서양애들도 대부분은 그냥 따라다니는 거겠지만…)

2. 매트릭스의 실존

매트릭스는 실존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매트릭스이죠. (30 쪽) 우리가 우리의 욕구와 자아를 보는 것을 방해하고, 교도소의 수도꼭지와 같은 쓸모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바로 우리의 매트릭스입니다.

매트릭스를 생체전기로 지탱시키기위해… 두주의 유급휴가, 스톡옵션 역시 마찬가지 이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250쪽)

그것까지는 당연한데,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의 매트릭스라는 주장(37~38쪽) 까지 나오면, 예전에 “털없는 원숭이”를 읽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래 맞아!’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유전자는 우리가 고통을 겪는지 쾌락을 겪는지는 관심이 없다. .. 고통보다는 쾌락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지 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체에 속해있는 한은 (구루가 되어 육체안에서도 육체를 초월한다면 모를까) DNA가 우리의 매트릭스라는 주장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각기동대의 “인형사”의 유혹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거죠…

3. 선택

정말 옳은 선택일까? 사실 저항군만 없다면 수억의 인간들이 계속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37쪽)

매트릭스 2, 3 에서는 매트릭스 외부세계에서도 무언가 알수없는 힘이 존재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네오가 초능력 같은 것을 발휘하는 장면입니다만..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마치 링에서처럼) 그곳은 또다른 매트릭스일 가능성이 있는거죠. ‘그럼 뭐하러 벗어난거지?’ 라는 허탈함만을 주게됩니다만..

환상으로 구성된 삶, 주관적인 쾌락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61쪽)

과연 그럴까요? 만일 제가 지금의 구로동 빌라5층의 따뜻한 보일러가 환상이고, 느부갓네살호의 어둠침침함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차라리 몰핀을 이용하게되지 않을까요? 주장은 멋있지만 말이죠…

4. 에너지원

사실 에너지원으로써는 소나 돼지가 더 적합했을 텐데, 매트릭스가 굳이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선택한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77쪽) 저로써는 별로 납득되지 않는 이유를 써놓았는데, 암튼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라는 이유말고 적합한 이유가 없는 듯도 합니다.

구멍.. 인 셈이죠.

5. 비명을 찾아서

우리소설중에는 비명을 찾아서가 대표적인데요. 이책에는 미국의 대체역사소설몇가지가 소개됩니다.

필립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등인데요. 2차 세계대전이 이.독.일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이 분할통치되는 상황을 그렸습니다. (89쪽)

또, 사고싶은 책 목록에 몇권이 추가되었습니다…

6. 시뮬라크르, 포스트모던

기억하시나요. TV에서 한동안 나오던 ‘시뮬라시옹’ 이라는 단어.

감독이 배우들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읽게 했다는데요.

“현실”에 대한 모든 접촉보다 “시뮬라크르”가 먼저이다…. 사실살 테스티 휘트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세계에서 모델은 현실을 대체한다. (104쪽)

라던가, 혹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점령당한 우리자신 ..에 대한 이야기가 약간 나옵니다. 이쪽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더군요. 다만, 사람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 하려면 발음 연습을 좀 하셔야 합니다.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장 보드리야르)

포스트모던하다, 라는 표현은 “이해하기 힘든 말을 지껄인다.” 라는 것과 등가의 표현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스트에겐 현실의 ‘어떤’ 재현도 이미 언제나 이데올로기 적이다… 이런 이유로 자크라캉은 “현실은 불가능 하다”고 했다.. (110쪽)

다만, 이렇게 현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어를 벗어나 존재의 순전한 물질성에 직면한다는 것은 극도의 충격을 줄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선불교”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7. 데자뷰

우리말로는 “기시감” – 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디선가 본듯한” 이라는 번역이 더 마음에 듭니다.

정신의학쪽에서는 반복되는 데자뷰는 분열의 초기라고합니다만, 매트릭스에서는 시스템을 고의적으로 조정할때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죠?

또, 기억하실런지, 그 옛날 “환상특급” 에서는 고도로 산업화된 미래사회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전원풍경속에 있는 사실적인 꿈”을 꾸게 해주는 기계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기계의 실수로 어떤 아줌마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반복해서 “하이킹”을 가게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저는 그 에피소드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줌마는 계속.. 데자뷰를 느끼죠. 영원히.

8. 만화스토리

사실 만화책으로 구상했던 거라고 합니다. 한때 만화스토리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는데(꿈만.. 꿨습니다.), 저에게 가장 맞는 직업은 도대체 뭘까요?

9. 불교

9장에서는 제임스 포드라는 불교학자가 불교적인 해석을 해주는데요. 간결하고 보기 좋습니다. (188~)

10. 인기있는 스토리

젊은 사람들이 다 좋아할 만한 전형적인 이야기의 뼈대는 이런 것이다. 외로움을 종종 느끼면서 여행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지루한 일을 피하려고 하고 정신적인위한을 찾으려 뭔가 추구한다. 그는 그의 부모님 세대나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 더 지적이다. 그는 신기하면서도 매혹적인 것들과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데 현실에서 종종 부딪치는 이런 만남이 그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준다. – 커트 보네거트 “헤세를 읽는 이유에 대해” – (219쪽)

아..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써야, 인기작가가 된다는.. 군요.

11. 모순론

네오의 충만한 잠재력은 그의 다음생애, 즉 부활 이후에만 실현될 수 있었다.

라는 대목에서 “자기부정”이 발전의 원인임을 이야기하던 “모순론”이 떠오릅니다. 국내에 마오의 모순론을 이쁘게 잘 정리해서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면 좋겠는데, 서점에서 뒤져봐도 잘 안보이더군요. 워낙, 전공이 그쪽이 아니라.

12. 예수

네오가 살게된 것도 어쩌면 트리니티의 능력… 이런 점들은 삼위일체의 신을 의미하는 그녀의 이름에의해 좀더 분명해진다…마가복음 14:20b 사이퍼의 배신이 없었다면 네오의 죽음과 부활은 없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유다가 없었다면 분명히 예수도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을 것이고… 신의 신성한 계획이란 측면에서 사이퍼와 유다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 (232~233쪽 하단 각주)

13. 기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선 미래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 – 256쪽

아마도 이책의 저자들이 이런 글을 진지하게 쓰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나가고 있는 길에 대해 뭔가 생각할 꺼리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 외과의사들은 깨어있는 젊을 여성의 뇌를 열어 수술을 집도할때 뇌의 특정한 부위를 자극시키면 여성이 웃게된다는 사실을…” – 268쪽

“2040년에는 어쩌면 생물학적 기원은 가지고 있지만 생물학적 사유과정과 전자적 사유과정이 혼합되어있는 … 존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두뇌에서 처럼 100조번의 연결들로 제한 되는 것이 아니라 … ” – 269쪽

12장과 13장은 엔지니어가 읽어보면 좋은 글들입니다. 13장은 빌조이가 썼고 위에 인용한 글들은 12장의 레이가 썼습니다. 빌조이는 레이를 존경한다, 고 하네요.

그리고, 275쪽의 “네오러다이트의 도전” 이라는 글은 유나바머가 쓴 선언문인데, 이사람 진짜 유식한 사람이군요.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좋지않다, 라던가하는 말은 이정도의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듯합니다.

네오러다이트.. 운동. 어쩌면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 아닌가 싶기도…

빌조이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때에

“미켈란젤로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를 돌에 새김으로써 ‘대리석을 감싸고있던 주술을 깨트린’것”

과 같은 방식으로 코딩한다고 합니다. 하긴, 감으로 – 대강 뚝딱 – 만들 때라던가, 음주코딩할때라던가.. 저도 비슷한 것을 느끼긴 합니다만.. ^^

또, 자신이 하고있는 일이 언젠가 인류라는 종을 대체하게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 한것이고.. 자꾸 그 의존도는 늘어가겠죠.

언젠가 강력한 컴퓨터에 우리가 종속되리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게다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수석과학자로써는 어쩌면 걱정해야할 문제같기도 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했던 것 처럼 ‘우리가 기차를 타는 게 아니라 기차가 우리를 타고 있다’ 문제는 과연 누가 주인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계보다 더 오래 살아남게 될 것인가에 있다” – 309쪽

“나는 달라이 라마의 –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한 윤리 – 에 담계있는 생각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 314쪽

위의 두개는 빌 조이의 글입니다. 그리고, 다음 것도

“나는 언제나 소프트웨어를 좀더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세계를 좀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믿어왔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 나는 도덕적 인간으로서 이일을 중지해야 할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다.” – 316

전, 이 글에 감동 먹었습니다만.. 요즘은 이런 곤조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죠?

14. 기타

그리고 포스트휴먼 문명은 오락활동등 쾌락을 얻는 오늘날의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볼것이다. 뇌의 반응지점을 바로 자극함으로써 매우 저렴하게 쾌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326쪽

 

보드리야르는 ‘매트릭스’에 대해 코방귀를 뀌고있다. 어떤 영화도 자신의 저서…에 담긴 내용을 형상화할수 없으며 영화 ‘매트릭스’가 설사 시도했다고 해도 잘못된 이해이거나 제멋대로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 339쪽

p.s. 네부카드네자르.. 라고 하면 느부갓네살에 익숙한 교인들에게 어색하지 않을까해서, 뭔가 그럴싸해보이는 느부갓네살로 바꿨습니다. 뭐, 우리가 맨처음 성서를 번역했더라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1차 번역본을 수입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올바른 발음이었을까요?


2003년 6월9일 반디에서 샀고, 9월30일 새벽에 읽기 시작해서 10월 19일 화요일 다 읽었고, 오늘 올립니다.

 

3 Comments

  1. eouia November 22, 2003 at 2:45 pm

    PKD의 높은 성의 사나이는 사실, 예상보다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뭐랄까. 이름값때문에 반드시 꼭 읽어야만했던 고전명작의 느낌이랄까요. 물론 대체역사소설의 고전과도 같은 작품이지만, 2차대전을 겪고 황화론에 호들갑을 떨었던 백인종이 아닌 21세기 한국인이 읽기에는 약간 멀뚱멀뚱.. -_-a

     
  2. 에드 November 22, 2003 at 3:29 pm

    저도 서점에서이 책을 보고 읽어보려고 했었는데…아직 구입을못하고 있습니다…더욱 흥미가 생기네요…읽어봐야지

     
  3. jinto November 22, 2003 at 5:16 pm

    eouia님, 조언 감사합니다~
    에드님, 사세요~

     

Leave a Reply

 

Theme by HermesThemes

Copyright © 2017 돌핀호텔의 기억.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