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한밤의 기억

1990년의 경희대 수원 교정은 밤이면 아주 깜깜해지곤 했다. 넓은 논이 펼쳐있어 띄엄띄엄 가로등이 보이는 그런 시골이었다. 바로 옆의 신갈호수 때문에 가끔씩은 짙은 안개에 파묻히기도 했었다.

아직도 술때문에 힘들어하곤 하는데, 그때는 신입생이 의례 거쳐야 하는 막걸리와 소주덕분에 하루하루가 몽롱했었다. 어느날 밤인가, 옆방사는 선배가 테이프하나를 들려주었다. 한밤중의 시골에서 “황병기의 미궁”을 처음듣고 소름돋던 기억은 십년이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홍신자의 기괴한 소리와, 가야금을 긁는 소리는, 내 오른쪽 두개골의 어딘가에 있는 깊은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음악이었기에 더욱 감동을 했다던가 하는, 그런 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완전한 감동에 싸여있던 그때의 새까만 느낌을 오늘 아쉽게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후에 황병기의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던가 하지 않았다. 또, 그의 연주를 보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릴 만큼 부지런한 인간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부터 자판을 두들기며, 다른쪽으로 머리쓰는 것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만큼 재미있는 것을 그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오늘 TV에서 만난 황병기 선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TV를 보다가,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전부 집어던지고, 가야금을 배우러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동을 받고,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란 것을, 지금은 안다.

코드를 작성하며

나는 결국 코더가 되었다. 그러니까, “센과 치히로의 모험”같은 것으로 상영시간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게 하거나, 거문고 산조를 피멍들게 연습해서 한 두명 일지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얻게된 것이 아니다. 나는 코더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신용카드를 긁을 수 있게했고, 또 그들이 온라인 상점을 만들수 있게 했다. 휴대폰에서 고스톱을 할 수 있게 했고, 주차단속결과를 이쁘게 프린트할 수 있게 했다.

그래, 그래도, 그런 일만 한 것은 아니잖아. 타자기보다 훨씬 편리한 편집기를 윈도우즈로 포팅하기도 했으니까.

요즈음 나는 생계를 위해서 다시 코드를 잡고있다. 코드를 잡기전에 한참이나 고민했었다.

다시는 신용카드 게이트웨이나, 주차단속통계프로그램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갑”을 위해서 파견근무를 하거나, 속보이는 사내정치에는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일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배우러 다니기로 했다. 2월부터는 소설가선생님과 공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미팅을 잘하면 모 오에스 소스를 보게될 것 같다고 약간 흥분하고 있다.

일년정도만 놀면서 곰곰히 생각하면 뭔가 떠오를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찬가지다.

 

2 Comments

  1. promise4u January 6, 2004 at 7:36 pm

    무언가 조직사회에 대해서 , 기업풍토에 대해서.. 회의적인 제권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제권님을 존경하고 ,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제권님이 걸어오신 길에도 아픔과 상처는 있었군요..
    제가 읽은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
    힘내시고.. 2004년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있으시길

     
  2. 안개꽃 January 9, 2004 at 10:40 am

    전 아직도 그러고 있는데…슬프네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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