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보수적인 것이라, “온돌”이 정착하는데에 거의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 라는 책은 그런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주로 한옥을 이야기하지만, 집의 구조에 집착해서 일일이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현재의 가옥 구조에서 TV를 향해 쇼파를 놓아둔 거실구조가 장식장의 높이를 30센치 내외가 되게끔 만들었다.

라던가,

70년대에는 30평형 아파트에도 식모방이라고 해서, 부엌의 바로 옆에 따로 방이 있었다.

라는 식으로 현재와 연결지어주는 부분이 많아서 읽기 좋았다. 한옥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 과거에는 식료품을 완전히 시장에 의존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기때문에 “광”이나 “곳간”이 집안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었다.

  • 기타 굴뚝이나, 기초공사와 관련한 이야기 등등.

화장실의 발전사를 다루면서,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 라고 했었지만, 현재는 “화장실과 처가는 가까울 수록 좋다”라고 바뀌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 역시 처가가 가까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결혼하면 말이지.. ^^

좋은 집

1600년대에 사시던 홍만선이란 분이 쓴 “산림경제” 라는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고 한다.

좋은 집자리는 냇기슭에서 찾고 계류의 곁에 따로 3~4칸 정자를 짓고,… 마땅히 아담한 것을 쓰며 속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추울 때는 추운 맛을, 더울 때는 더운 맛을 알게 한다면 선비가 살 만한 곳이다.

읽으면서 딴 생각을 했는데.. 우리에게도 지방세력들이 강성한 “조선시대”가 있었다면, 지금 지방의 곳곳에는 화려한 색깔로 장식되고, 독특한 경향을 간직한 고택들이 사방에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일찍 중앙집권에 성공한 조선 덕분에 지방에서는 큰집을 짓기도 힘들었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기도 힘들었었다.

그 당시에야 왕권강화를 위해서 “사병혁파” 따위가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여행을 가서 좀더 많은 볼거리가 있기를 바라는 지금의 나로써는 아쉬울 뿐이다.

일본 화장실은 벽을 본다.

내, 가본 적,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아무튼, 전통적으로 일본의 화장실은 벽을 보도록 되어있고, 중국과 한국은 문쪽을 본다네. 전에 모르던 차이점.

이것은 “동아시아의 뒷간-김광언” 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왠지 흥미진진 할 것 같은 제목이다.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거시담론” 이 아닌, “미시담론”쪽의 책들이 꽤 많이 나온다. 읽을 꺼리가 늘어난다.

학교 앞의 하숙집에 살 때, 아주 신기한 화장실을 본 적이 있다. 화장실의 문은 하나인데, 용변을 보는 구멍은 두개가 나란히 뚫려 있었다. 그게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선후배들과 두사람이 나란히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상황에 대해서 농담을 하곤 했었다.

알고보니, 용변을 본다는 것을 부끄러운 행위로 보는가, 아니면, 꼭 필요하고 당연한 생리현상으로 보는가, 에 따라서 과거에는 벽이 없는 화장실 구조를 가진 경우가 꽤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고, 중국에 가면 꽤 많이 볼 수 있다고..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도 사람을 만든다.

처칠이 한 말이라고 하는데, 책의 거의 뒷부분에서 소개된 문장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기술은 다시 우리를 제한하거나, 혹은 살찌우게 된다.

꼭꼭 막혀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은 저절로 막힌 생각을 하기 쉽고, 외부와 소통하기 쉽도록 지어진 집은 저절로 열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진은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을 때 서원안 찍은 사진이다. 건물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있다.

단점

딱 한군데 단점(?)으로 보이는 것은…

“기독교의 유입”이 입식생활로의 유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서술했는데, 글쎄… 그건 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다행히 이런 부분에는 “개인적인 생각인데..”라는 식으로 토를 달아 두었기 때문에 어디가 정설이고, 어디가 의견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기독교가 그리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일본에는 우리보다 침대가 덜 팔린다던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좁은 방에도 다들 침대를 들여놓은 것 같던데..

그래도 추천

건축에 대한 책은 자꾸만 내가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해서 요즘에는 잘 보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설계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구나. 라고 느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포기해가는 건지, 아니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건지..)

아무튼, 읽어볼 만한 책이다.

— added

한 구절만 더 인용하자.

비를 통해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취를 느끼려면 처마가 있는 집이어야 한다. 처마가 없는 집에서는 들이치는 비를 막는 데 급급해 비를 즐길 만한 여유가 없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다양한 모습과 소리만으로도 혼자 시간을 즐기기에 넉넉하다. 장대비의 세찬 소리뿐만 아니라 비가 그쳐 갈 무렵 한 방울씩 떨어지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낙숫물 소리까지, 비와 처마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정경은 한참을 보고 듣고 있었도 지루한 줄을 모른다.

그럴 때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옥의 머름대에 기대어 턱을 괴고 보는 것이 여운을 자아낸다.

 

One Comment

  1. hanti February 9, 2004 at 12:06 am

    정말, 70년대 지은 30평대 아파트인 저희 어머니댁에도 식모방(?)이 있습니다. 현재 어느 집에서도 식모방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요. 당시는 30평대 아파트 살면 부자였고, 인건비는 아주 싸던 시기였나봅니다.

    침대와 기독교 부분은 저도 의문이네요.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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