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좀 힘들었습니다. 워낙 술마시는 것과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만나는 사람만 계속 만나는 저로써는 말이죠. 어쨌든,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서, 수첩에 지금까지 끄적거려놓은 것을 올립니다.

8.26

장스포츠랑 이글크릭을 비교해 보았다. 확실히 배낭전문 메이커가 만든 것이라 좀 무거워도 등과 어깨가 편했다. 이글크릭으로 결정.

10시에 집을 나왔다. 회현동 우리은행으로 가서 바트화환전을 하기로 했다. 어제 분명히 “내여자니까”를 MD에 녹음했는데, 실수로 지워버렸나봐. 이런.. 그걸 듣고 싶었는데… 어쨌든, 별로 떨리지도 않고, 어제는 꽤 긴장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이번 여행은 편한 여행은 아닐 것 같아. 트렁크를 끌고 호텔 도어맨 신세를 지는 건 처음에 며칠 뿐이야. 내가 지금 뭘 하겠다고 나가는 건지, 갑자기 그걸 모르겠어.

회현역. 점심시간인가봐, 넥타이들이 떼로 지나가. 나는 배낭을 메고 그 사이를 지나가고.
우리은행에 가서 환전하는데, 아가씨가, 태국냄새가 난다고 했어. 어? 샤워 했는데?환전하러온 아저씨 하나가 말을걸어. 유럽간대. 담소를 나누니까, 조금 즐거워졌어.

회현역 앞 약국에서 아로나민 골드를 사는데, 아주머니가 알아보신다. 한번 익숙해진 사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몇년전에 회현동에 살았었지.

8/26 1:40

이제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다.
김포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삼십분이면 도착한다. 안양에 들렀다 왔어도 충분했다. 언제나 공항엔 일찍온다. 게다가 이번엔 리더스 클럽카드도 안가져왔다. 이런. 모두 모두에게 전화했다. M 님 전화번호를 모르는 것이 미안했다.

8/27 3:15

벌크헤드로 앉았다. 다리를 펼 수 있어서 좋다. 타이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이 낯익어 보이기까지 한다. 비행기는 지루한 것. 한참 지루한 것.

돈무앙 공항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잘 있었고, 출국하는 사람이 없는 늦은 시각. 3층 출국장보다 더 좋은 “택시 타는 곳”을 발견했다. 혼자라면, 새벽 첫차까지 기다릴 수 도 있겠지만.

에어컨이 나오는 공항에서도, 문을 나서면 느껴지는 공기에서도, 내가 다시 어딘가로 떠나왔구나, 라는 감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스쿰윗에 램브란트는 오만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급이다. 삼천원도 좋을 텐데. 수다를 떨다가 방에 들어왔지만 결코 잠은 오지 않는다. (저 사진은 램브란트가 아니라, 방에서 보이는 바깥.)

커피한잔만, 하는 심정으로 밖에 나가 보았는데, 두시를 넘겨버린 스쿰윗은 너무 너무 조용했다.

이십밧에 ‘존것’ 보여주겠다는 택시를 무시하고 조금 걸어보았지만, 걸어볼만한 감흥이 생기질 않는다.

골목길을 뒤따라오던 발자국 소리가 무서웠지만, 어쩌면, 그 애도 내가 무서웠을지 몰라.

길거리에서 먹을 거리를 만드는 아줌마..

파타야 가는 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꽤 힘들다고 생각하다가, 삼지법을 하고 명상을 한다. 에.. 난 지금, 심리 치료중인 거라고.
그래선지, 쏨땀과 똠얌탈레가 입에 맞아선지 어쨌든, 똑바로 보이는 게 있었다.

게다가 남자가 옆에 앉으니까, 말도 잘나온다. 꺼토이가 될지도.

타이거 쥬.

불쌍하다, 고 했던 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여기 들어오는 입구의 불상에 공손하게 진심으로 합장했었다.
저 거대한 고양이를 유리안에 넣어놓고, 또 우리안에도 가둬놓는다.

할딱거리는 새끼 호랑이의 지친 표정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까지 감상적이었나 싶게…

흥겨운 음악과 함께한 타이거 서커스는 슬픔 그 자체였다.

그래도, 끝까지 계속해서 보았다. 못볼이유는 없어. 너나 나나 우리안에 갇혀있는 거겠지?

‘오늘 당장 가죽이 벗겨지는 한이 있어도, 사육사, 너 물어버리겠어’ 하는 정도의 만화 대사 같은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멋있기만 할뿐. 괜시리 그랬다간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돼지랑 새끼 호랑이를 같이 넣어 뒀어.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란 거야?)

악어농장 …

이번에는 제일 잘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는 ‘그래 약육강식이 법칙이라면 자세히 봐주겠어’ 라는 심정으로 두눈을 부릅떴다. 헌데, 이번엔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진짜든 가짜든, 저들이 버는 바트는 내가 버는 원보다 훨씬 그럴싸 해보였다.

목숨을 걸고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

세상은 목숨을 걸어야만 뭔가를 주는가.
머리를 악어 입에 들이밀어야 오늘 밥을 먹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하면서 나오는 길에…

이렇게 힘든게 바로 현실이었는데, 잊고 지냈다는 생각과, 그게 아니라, 이게 현실의 진짜 모습이라고 인정하면, 그때서야 현실이 될꺼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 옮겨 쓰고 보니, 좀 험악하다.

 

One Comment

  1. 빨강머리앤 September 21, 2004 at 5:21 am

    여행이..스스로가 느끼는만큼이 여행이겠지..
    왠지..작정하고 혼자간 여행이라 그런가..
    시니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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