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번 깨어나서 꿈인지 생신지 모를 격렬한 경험을 하고서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는 열두 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눈을 떴다. 하루키식으로 꼼꼼하게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온몸을 씻었다. 식당에서 대강 밥을 먹고는 집을 나섰다. ‘오이’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썽태우 터미널이 있는 딸랏쏫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썽태우를 타고서 카론 비치에 갔다. 방을 나서기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챙겼었다. MD는 깜빡했고, 카메라는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

멀리 있는 이들은 이곳의 인간들이 계속해서 슬픔에 젖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 그러니까, 사고의 현장에 있던 이들은 – 다들 가게를 청소하고 물건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슬픔에 젖어있는 것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다. 아이들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몇 달 동안 손님은 없으리란 걸, 자기들도 알고 있지만, 어차피 대안 같은 건 없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푸켓에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름다운 곳 까론을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미숫가루 같은 까론의 모래를 내 발로 밟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갔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까론은 너무 아름다웠다. 하늘 높이 떠오른 패러세일링하는 놈은 정말로 재미있어 보였고, 천명도 넘게 들어차던 곳에 겨우 백명정도가 드문드문 쉬고 있는 모습도 한가로와 보였고, 게다가 발에 닿는 그 모래는 여전히 미숫가루처럼 고왔다.

그렇게 까론은 멀쩡했다. 여기서 두 시간쯤 걸리는 카오락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 날아온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 현장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제대로 복구되는데 일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잠시 후면 모든 사람들이 – 심지어 이곳에 있는 이들도 – 이 사건을 잊고 예전처럼 살아갈 것이다. 나 자신도 어딘가 심각한 경험을 했다고는 생각하지만 결국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일이 나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게 하루키 식으로 “내가 어딘가 변한 것 같고, 그래서 세상도 어딘가 변한 것 같다. 앞으로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또는 세상이 될 수는 없다.” 라고 표현할만한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서울로 들어간 환자들과 유가족들이 게시판에 “정말 고마웠다”고 올린 것을 읽을 때마다 “정말 미안”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가끔 만 동정했으며, 그들이 아프다고 울 때, 그저 쳐다보고 어깨를 만져주는 일 말고는 한 것이 없었다. 최대한 그들과 ‘동감’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어디까지가 착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나쁜 것인지 헷갈려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부끄러워졌다. 진심으로 아파했다면 나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까론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한국인이 하는 다이빙가게에 들렸다. 사고 다음날에도 다이빙을 나갔다고 해서 눈총을 받는 모양인데, 고객에게 돈을 받고 그 대가를 제공할 때 인색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 주인장이 말 많은 이 동네에서도 대담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들러봤다. 하지만, 주인장은 없었다.

앉아서 콜라를 마시는데, 홍콩경찰들이 실종자를 찾는다면서 한집씩 돌고 있었다. 동양인끼리의 영어만큼 쉬운 건 세상에 없겠지. 몇마디 도와주고 나서 말했다. “이런 말을 하긴 좀 거시기하지만, 성룡말고 진짜 홍콩경찰은 당신들이 처음이야”. 그들은 웃으면서 “그런데, 우리는 쿵후를 못해. 진짜 홍콩경찰은 그렇게 날아다니지 못한다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해피뉴이어를 소리쳤다.

영화나 소설은 결국 거짓말일 뿐이다. 누구나 그저 밥을 먹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흔들이 추를 생각하네.
마음의 둥근 원이 닫힐 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핑크스의
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
그대의 꿈을 꿰뚫었네.

물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
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네.
푸른 옷자락을 쳐들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네.

–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중에서

 

5 Comments

  1. 미친병아리 January 6, 2005 at 12:18 am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이두연 January 6, 2005 at 4:34 am

    형.. 저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빠이에서 은경이누나랑 함께 봤던 두연이에요..
    그때가 9월 이었나?? 기억두 가물가물…
    어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새해복 많이 받구…. 행복 하세요..ㅋ

     
  3. 늑대호수 January 6, 2005 at 10:08 am

    태국의 사고 소식을 듣고 생각이 났지만 결국 이제서야 방문해 봅니다. 사람 사는 일이 한 치의 앞을 볼 수 없는 법이라지만…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찹찹합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계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사고를 전후한 글들을 잘 읽고 갑니다.

    무엇보다 건강히 귀국하시길 기원합니다.

     
  4. 박종일 January 7, 2005 at 6:00 am

    msn에 계셔서 귀국한줄 알았는데. 아직 태국이시네요. 얼굴 뵙고 싶네요. 귀국 하시면 연락 주세요

     
  5. 순돌이 January 7, 2005 at 12:32 pm

    제권아. 내 메일로 msn 좀 알려줘..

     

Leave a Reply

 

Theme by HermesThemes

Copyright © 2017 돌핀호텔의 기억.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