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달을 여행했는데 뭔가 얻은 것, 혹은, 변한 것은 없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귀국후에 처음 업계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 선배가 물었다. “여행하면서 좀 얻은 게 있나?”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별로 얻은 것도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걸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뭐, 그냥, 여행한거죠.” 선배는 말했다. “여행 제대로 했군.”

나중에 생각해보니, 꽤, 그럴싸해 보이는 대답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 앉아있을 때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면, 자연스레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바뀐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지금까지 떠오른 내가 알게된 것, 혹은 바뀌게 된 것들을 적는다.

1. 경제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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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돈에 대한 나의 자세다. 그 동네에서 열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살아가는 방식은 참 다양했다. 또, 작은 다리하나를 국경이라고 부르면서 살아가는 두나라 (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면서 부유한 나라가 가지는 장점이 무언지도 맨눈으로 확인하게된다. 돈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느끼게 된다.

사진을 아무리 보고, 여행기를 아무리 읽어도, 자기 주머니에 3일치 식비만 남아있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불편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그게 어떤건지 느끼기 힘들다.

집에 오기로 작정한 날, 귀국 항공권이 없어서 서울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야만 하는 상황은 (괜찮지 않을까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긴했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눈으로 보고 왔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주머니에 돈이 남아있으면 모두 써야만 집에 들어오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뭐, 어쨌든 괜찮지 않을까.

2. 고독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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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에 – 그러니까 작년 여름에 – 배낭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 86학번 선배를 만났었다. 자유를 맛보러 여행을 가는가 하는 따위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선배는 자유란게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었다.

나는 자유는 고독이랑 같은 게 아닐까요, 라고 말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 같다. 혼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는 사실은 혼자서 있는 시간을 견뎌내야하는 의무와 같은 것이었다.

며칠 동안을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가, 그마저도 지쳐버리면 혼자서 여기저기 걸어다니거나 아무것도 안하고 나무들과 구름들만 쳐다보곤 했다. 서울에서는 얼마나 그리워하던 자유였을까.

하지만, 서울에서는 자유를 따라다니는 고독이란 것을 잘 몰랐다. 자유보다 고독이 더 크게 느껴질때면, 그걸 피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호세꾸에르보를 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고독이건 자유건, 한참동안을 마주보고 나니까, 이제는 심심하고 사람들이 다들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런갑다, 하고 체념하게 된다. 어차피 나는 혼자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라고.

그렇다고, 완전히 고독에 빠져서 나는 고독한 인간이야, 라고 중얼거리는 만화캐릭터가 된건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어진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다.

 

3. 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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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알게된 것. 히피가 무엇인지. 서양히피들은 많이 못봤다. 인도에서 20년째 방랑중이라는 일본인-프랑스인 히피커플을 만났다는 사람은 만나봤다. 다행히 한국인 히피는 만났다. 자신들을 히피라고 하면 기분나빠할지 좋아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홈페이지따위는, 이라고 하면서 아예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에는 진짜로 여러가지가 있고, 어찌 살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상황이나 타인의 몫이 아니다. 그들을 보고 확실히 그렇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다만 칭찬해주고 싶었다. (물론 내 칭찬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한 목표인 것 같지만 어쨌든 그들은 잘 해나가고 있었다.

4.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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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깽쏨, 쌩쏨, 뿌퐛퐁커리, 뿌담, 까이삥.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가진 것들이 먹고싶다. (글을 쓰다보니 입에 침이 고여버렸다.) 푸아그라같은 것보다는 이런 것들이 더 맛있을꺼라는 편견도 생겼다. 웨이트리스들이 테이블옆에 서서 쌩쏨을 콜라랑 얼음에 부어주던 분위기도 그립다. 도대체 삼성동에는 고급스러운 척 하려는 바들이 왜그리 많아진 건가?

가고 싶은 곳들이 더 많아졌다. 여행자들에게 주워들은 수많은 지명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위앙띠엔, 다람살라, 탄자니아, 남아공, 영국, 아일랜드, 양곤. 그리고, 까먹어버린 이름을 가진 곳들에도 가고 싶다. 그냥 어디라도 가고 싶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이렇게, 적긴 적었는데, 겨우 처음으로 배낭여행 한번 해보고서 뭐가 어떻더라, 하고 떠드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 사실은 그냥, 여행잘하고 왔을 뿐인것 같다.

 

One Comment

  1. hanti February 24, 2005 at 1:31 am

    다섯달 동안의 여행 경험이 어디 한 두 마디로 간단히 표현이 될까요. 여기 적으신 것 외에도 표현 안되는 많은 것 얻어오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최근 일주일간 호주여행을 다녀왔지요.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든 여행은 참 소중한 경험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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