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가장 걷기 힘든 곳은 스쿰빗이었다. 씨얌쪽이 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스쿰빗은 인도가 좁아서 걷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어디를 걸어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내 어깨를 치거나, 큰소리를 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한번은 카오산의 노점에서 죽을 먹는데, 바로 옆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었다. 우리는 꽤 안전하다는 느낌으로 계속 죽을 먹어대기만 했었다.

오늘 몇번인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짝을 쳐다보았다. 전처럼 화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쁜가보네.. 하고 한참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고. 그렇게 사시나보네, 했다.

나는, 절대로, 라고 할만큼 뛰지않았다. 지하철에서도 횡단보도에서도.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빡거리면 제자리에 멈춰버렸다. 난 … 백수니까 괜찮아.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러니까.

집에 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 한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한참동안 운전자를 향해서 두가지 수신호를 해줬다.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끼우기도 했다. 바쁘게, 얼른, 가셔서, 해야할 일을 하쇼.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나지 않았다.

어제는 카트라이더란 놈을 해보았다. 내가 이제 돈을 벌려면 게임이란 걸 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곳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게임치고는 건전하고 매너있는 것들이었다. “그래 니차 똥차”, “작작좀 부딪히시지” 따위. 전같으면 화나서 하루종일 씩씩거렸을 수도 있는 말들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고독” 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한가지 더 있었다. 그건 마음대로 안되는 인생때문이다.

세상에서 자기 뜻 대로 되는 건, 커피에 들어가는 설탕말고는 없다. 가기 싫어도 학원에 가야하고, 아무리 과외를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행복하지 않고, 신호위반을 하면서 차를 몰아도 내일이 되면 다시 같은 곳으로 나와야 할 뿐이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대는 것 만으로, 자동차를 모는 느낌이 들고, 다른 사람과의 경주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마음대로 안되는 인생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동안 “게임성”이라는 단어가 뭘 말하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사실은 고독과 통제력이었다. 천억단위의 돈이 사람들에게 저 두가지를 주기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저런 생각들이 하루 종일 머리속을 맴돌았다. 현실계에서는 불가능한 “통제력” 이란 걸 주는 것이라면, 그게 얼마나 비뚤어진 초등학생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도대체 자기가 현실의 인생에서 주도할 수 있는 게 몇프로나 된단 말인가.

헌데.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놀던 것들은 어떤 것이었나 생각해보면, 아.. 세상은 사실 모두 그런 것들로 채워져있었다.

나는 브루마블을 하면서 평생 못가볼지도 모를 “마드리드”에 호텔을 짓기도 했고, 쬐끄만 장난감 비행기로 (심지어 우주까지도) 자유자재로 비행하기도 했었다. 그게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했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담배를 못 끊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게임들도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새로운 놀이기구일 뿐인 것을. 어린 애들에게 미래의 욕구불만의 씨앗을 제공하는 일일 뿐인 것을.

그래도, 저녁 열한시쯤에 함께 손을 잡고 피씨방으로 들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보면서, 신나게 게임을 하면서 사랑이 깊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왜곡하면 어떻고 안하면 어떤가. 사람들은 이미 현실계에 실증이 나버렸는데 말이지. 고민하던 그 단어 “게임성”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4 Comments

  1. ssall March 21, 2005 at 1:24 pm

    여행 다녀오셨군요..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근 일년만에 블로그 다시 열었습니다. 뭐,, 쓸만한 글이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서도.. 예전 무버블타입에러가 이제 해결되어서리.. 아무튼 혹시나 하여 아는척 해봅니다. ^^

     
  2. 김형렬 March 24, 2005 at 2:58 am

    난 언제가부터 축구가 훨씬 더 좋아졌는데, 어느날 뒤를 돌아보니, 내가 Saving Private Ryan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었다. 게임이든 영화나 소설이든 그건 현실 인간의 탈출구라는데는 비슷한 것 같다. 당대의 인간들이 어느 것을 좀더 즐겼느냐의 차이일뿐. 여전히 월드컵 축구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게 나니까 말이야 푸훗~

     
  3. 빨강머리앤 March 24, 2005 at 4:00 am

    그저 재미일뿐!
    귀여운 거북이차!!
    ^^

     
  4. jjuni March 27, 2005 at 4:46 pm

    긴 여정 마감을 하셨네요.
    제 친한 친구가 최근 둘이나 태국으로 짐을 싸서 날아가서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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