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구. 조건은 모두 같아. 고장난 비행기에 함께 탄 것처럼 말이야. 물론 운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겠지. 터프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녀석도 있을 테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녀석은 아무 데도 없다구. 모두 같은 거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있으며,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두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빨리 그걸 깨달은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강해지려고 노력해야 해.시늉만이라도 좋아. 안 그래? 강한 인간 따윈 어디에도 없다구. 강한 척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뿐이야.”

” 한가지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야?”
“응.”
쥐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맥주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짓말이라고 해주지 않을래?”
쥐는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코엑스몰 반디 옆에 있는 CD, DVD 가게에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는데, 작년에 문학사상사에서 이쁜 표지로 내놓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놓여있었다.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들고 나왔다.

오늘 지하철에서, 이 녀석을 읽는데, 눈앞에 나보다 머리 하나쯤 더 키가 큰 여자가 서 있었다. 원서로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팟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원서에는 “Dan Cody” 이라는 단어에 연필로 “mining tycoon” 이라고 주석이 달려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오피스 걸로 보였다. 이름있는 외국계회사에서 근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의 일상이 그려졌다. “아침마다 회사에서는 외국인 강사를 모셔다가 강의를 듣는다. 오늘 저녁에는 강남역 더블린에서 맥주를 먹기로 약속했다. 남자친구는 아직” 등등.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알고보니 사실 그녀는 처녀실업자였고, 오늘도 회사가 아닌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게 상상해보는거, 별로 쓸데없는 일이지만, 지하철에서 따로 할일도 없으니까. 가끔 생각나면 하는 “항문조이기” 정도 말고는.

어쨌든, 하루키를 읽으면 다시 포근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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