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이 걸려있는 일을 할 때, 전처럼 마음을 졸이며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러 그 일과 관계없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산보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이번에는 장회익의 “공부도둑”을 읽는다. 70살 할아버지다. 글 잘쓰셨다. 읽다보면 미뤄두었던 문제가 가끔 떠오른다. 어려운 문제들이다.

나는 아직 감곡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면 내가 미적분을 이해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이제는 아버지께 미적분을 가르쳐드릴 수도 있다고 말씀드릴 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경쟁상대로서 아버지를 넘어서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고, 아버지는 이제 나한테 즐겁게 져주는 순간이었다. 과연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시면서 기꺼이 나한테 배우시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을 함께 학습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서로 갖지 못했고, 또 내 이해 자체가 그다지 깊지 못해 결국 아버지께 이것을 완전히 이해시켜드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훨씬 쉽게 설명드릴 수 있었겠지만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이 겨우 이해했을 뿐 아직 남을 이해시키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나는 아버지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배움을 위해서라면 나이 어린 자식에게 배우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학구적 자세가 그것이다. 남 앞에 머리 숙이고 배운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아버지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편의에 따라서는 안된다. 아래는 그 문제에 좋은 답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내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내가 이 시험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릴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나로서는 이번 대학입시가 매우 중요한 관문이 되는데, 여기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내가 합격하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이라면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 안 될 것이 없겠지만, 내가 합격하면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나를 붙여달라는 것은 누구 하나를 떨어뜨려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가 아닌가? 내 앞에 빵 조각이 하나 있는데 내가 먹으면 동생이 먹을 게 없고, 동생이 먹으면 내가 먹을 게 없을 때 나는 내가 먹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것인가? 결국 나는 공정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길밖에 없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인데 내가 합격한다면 이는 옳지 않은 일이니 단지 누구 하나 실수해서 순서만 뒤바뀌지 않게 해달라는 것 이상 더 드릴 기도가 없었다.  (장회익-공부도둑 중에서)

아.

나는 한 개체로서 10년, 20년 혹은 60년, 70년 전에 출생한 그 누구누구가 아니라 이미 40억 년 전에 태어나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살아온 온생명의 주체이다. 내 몸의 생리 하나하나, 내 심성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이 40억 년 경험의 소산임을 나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내 진정한 나이는 몇 십 년이 아니라 장장 40억 년이며, 내 남은 수명 또한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아니라 적어도 몇 십억 년이 된다. 내 개체는 사라지더라도 온생명으로 내 생명은 지속된다. 지금 나는 오직 ‘현역’으로 뛰면서 온생명에 직접 기여할 기회를 누리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좀더 큰 의미의 생명 그리고 좀더 큰 의미의 ‘나’는 앞으로도 몇 십억 년 혹은 그 이상으로 지속될 온생명이 된다. (장회익-공부도둑 중에서)

전에는 이런 글을 읽고는 감동먹고 뻑가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라고 중얼거렸었는데, 어째 지금 떠오르는 적절한 형용사는 “나이브(naive)” 다. 흐흐.

앞의 두문장은 인터넷으로 발견한 문단이었다. 책으로 읽어보니, 저 앞문장의 바로 다음에는 이런 글이 이어진다. 이게 더 그럴싸해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 사실 순서가 좀 바뀐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한일이냐? 지금 나는 오히려 순서가 좀 많이 바뀌어 어느 한 대학에만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이 또한 좋은 일이고, 당사자 자신도 하기에 따라서는 더 좋은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기껏 이 정도 일로 기도를 드렸으니 당시 하느님이 이 기도를 듣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One Comment

  1. 김석준 April 27, 2008 at 10:43 am

    어? 공부도둑 읽고 계시네요. 저두 도서관에 대출 신청 해 두었습니다. 읽은 분들 평이 좋더라구요. 담에 뵈면 한번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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