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의 레미안

저는 구로3동에 사는데요. 대림역하고 구로공단역 사이의 어디쯤입니다. 그런데, 이사와서 보니, 이 동네가 그리 잘사는 동네가 아니더군요. 공동화장실이란 것을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았으니까요.

전에 등본떼러 동사무소에 가보면, 아… 참 한심하다, 싶을 정도의 건물이 떡 서있었습니다. 미닫이 문이 달린 동사무소란 건, 영화에 세트로나 쓰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도 등본떼러 동사무소에 가보니, 동사무소자체는 그대로였지만, 그 근처는 완전히 도심과 다를바 없더군요. 한지역 전체가 싹 갈아엎어져서, 무언가 - 아마도 쇼핑센터 - 를 만들기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는 레미안 바로 앞이네요.

이사오면서부터 왠지 이 동네는 사라질 것 같아. 빨리 사진이라도 찍어두어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욕심 채우자고, 그분들께 불편을 드리는 것 같아, 망설였더랬습니다. 오늘 보니, 그.. 오래된 골목골목은 이미, 골목골목이 아닌 허허 벌판이더군요.

돌담 3길..같은 건 이젠 없습니다.

이렇게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모습은 당연히, 정상적인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쁘다… 거나, 슬프다… 거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서, 아르바이트하는 회사에 갔더랬습니다. S사와 함께, 휴대폰을 만들고 있네요.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 나도 여행이나 가면 좋겠어요.‘라고 하는 후배한테 좀 미안한 생각도 들고, 사장님한테도 그렇고… 기술자의 모습이라 본받던 사장님은 여전히 십년 전처럼 일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아무래도 뭔가를 설치한다는 것은 가만히 딴생각할 시간을 주는 일이라, 오늘도 데비안을 만지작 거리면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역시, 레미안이 들어서고, 덕분에, 차도가 아닌 인도로 걸어다니게 되고, 그렇게 불편을 삭제해 가는 것. 그런 것이 발전인가. 내가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도, 이러한 “발전”인가.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당연히… 어딘가로 잘 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다시 한번 “이기심이란 아름다운 감정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립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올바르다. (What is, is right.)”

내가 살아가는 방식, ‘파티션이 있는 회사에서 열심히 데비안을 까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얼마간의 보수를 받는 것’ 이 적절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좀 살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자꾸만 떠오르지만, 결국 이런 생각은, 체제에 대해 내가 어떠한 시각을 가질 것이냐를 결정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뒷목을 잡아끌 것이 확실합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전에 어떤 사회주의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건.. 좀..’ 하는 정도의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다행히도, 종종 앞길을 밝혀주는 선배께서는 ‘그건 내가 하는 사회주의랑은 다른 것인가봐.‘라는 어려운 말로 동의하는 눈빛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시장경제는 옳다. 다만, 기회제공이 올바를 경우만 그렇다.” 라고 떠오르는 대로 대꾸했는데, 글쎄.. 하는 표정을 보이더군요.

글쎄… 그런 것이 가능할까.. 그런 표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자네처럼 럭셔리한 것을 밝히는 사람이랑 안어울리는 고민이야… 하는 표정인지도.

서른이 넘었는데도.. 갈길이 먼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떠오르는 것들이라도 정리해놓아야 하겠습니다.


  • 세상의 자원이 한정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큰 오류일 수 있다.
  • 창조적 소수에 의해 생산력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 세상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 외부로부터의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만큼이나, 명상을 통한 초월도 중요하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시는 어떤 회사의 사장님이나,

오년만에 만난 인간에게 “제권씨, 잘지냈어?” 라고 말걸어오는 낯설은 동료나,

이십년째 같은 자리에서 각양각색의 인간들에게 교양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로 세상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