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천한 직업

“한국에서 가장 천한 직업: 40명의 팀원들 데리고, 이통사 하청받는 임원.”

이통사말고도 대기업들이라면 똑같겠다. 너무… 시니컬한가?


심히 괴로우신 상태로 카운셀링을 부탁하신 벤쳐기업의 사장님께서 뭔가 “화두”같은 것을 달라고 하셨다. 난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쳐다보다가

“천국은 정말 8000원인가?”

라고 물었다. 취하신 상태라 그랬는지, 그거 정말 굉장한 화두, 라고 하셨고, 우리는 “가격”이란 것에 대해서 한참이나 논했다.

우리는 적절한 가격에 몸을 팔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우겨댔다. 사장님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면박을 주셨다. 그 와중에도 곤조를 지켜야 사람답게 사는 거라고. 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일은 참 힘드네.. 라고도.


“착하게 살아라” 라는 문구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있는 분께, 과감하게 말했다. “추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조차도 힘들지 않을까요.”

착하고, 동시에, 현실에서 힘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저, 착하려면 착하고, 성공하려면 성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저분한 세계에서 추해지지 않기를 노력하는 것도 가상한 일 아닌가. 그게 타협인가? 그럴수도. 어떻게 하든 부채감은 깎여나가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안그럴까, 라고 말해도 역시, 한국에서 소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몸도 다치고, 마음도 다치는 일이다.

서른 네살된 사내아이가 마흔살의 아저씨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방콕에서 딱 일주일만 있자고 졸랐다. 결국은 승락할 것을 한참이나 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린 것 없는 십년전의 회사 후배가, 열심히 잘난체를 했지만, 결국 난, 다시 십년뒤에도 형을 좋아할꺼라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 십년의 인연동안, 누구나 형의 고집과 타박을 피하고 싶어했지만, 또 누구나 그 형의 완결성있는 코드를 존경했다.


그게, 아무리 심각한 대화였든지, 아무리 속이 울렁거렸든지 상관없이, 이런 대화는 마음을 기쁘게 했다. 그건 그렇고,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형이나 나에게 남아있는 대안은,

  1. 상품성에는 상관말고 조용히 기획팀의 지시를 기다리는 "엔지니어다운" 삶과,
  2. 월급과는 거리를 두고 전처럼 라면을 먹으며 하고싶은 것을 고집하는 "아티스트다운" 삶

두가지만이 있었다. 단어선정에 신경이 쓰이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다.

결혼도 안했고 직장도 없는 나로써는 모든 것을 백지로 두고 어찌살까를 고민하고 있다지만, 결혼도 했고 직장도 이끌고 있는 형으로써는 나처럼 편안하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기업 사장의 모든 결정은 정치적이고 경영자적인 것이니까.

어쨌든, 나는, 형이 후자를 택하길 바랬다. 한 오년뒤에는 뭔가 그럴싸한 거가 나오지 않겠나 하면서.

뒷목이 땡긴다 하시는데, 방콕에 가면 짜이디마사지에 모셔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