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기장에

고개를 숙이고 글을 적는 동안 남부 유럽의 어떤 실개천이 떠오른다. 영화에서 봤겠다. 개천 양쪽으로 나무들이 우거진, 작은 배가 일없이 떠다니기도 하는 그런 개천을.

눈을 들어 현재를 보면, 회현동 신세계 십일층. 소란스러운 스타벅스 매장이다.

모든 아줌마들이 루이뷔똥을 품에 안고, 역시 루이뷔똥을 품은 아줌마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 진지해서,

작은 별 동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북한 인민같기도하고,

남편의 골프여행에 외도도 포함되는지 걱정하는 듯도 보인다.

애들 성적에 대한 노력담. 그 노력에도 불구한 실패담. 그에 이어 한국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 처럼도 보인다.

혹은 어쩌면, 어제 TV에서 엠씨몽과 이혁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엠씨몽이 백명의 여자를 꼬셨다더라, 라던지, 이혁재가 마누라한테 엄청 잘한다던가 라던지, 그래도 잘생긴 남편이 좋다던지, 역시 남편은 돈 잘벌어다주는 남편이 최고라던지, 그런데 시어머니는 또 전화를 했다던지, 이민가면 안볼수 있을까라던지.

그렇게 지도자 동지나 교육정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언제나처럼

교보문고 여행서적 코너에서, 이제는 더 살만한 것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잡지라도, 라는마음으로, 뚜르드몽드를 사서 읽으며,

언제나처럼, 외국을 헤매고 다니는 상상을 하고 있다.

지금.여기.에 살라는 에크라르트 아저씨의 말에 열심히 밑줄을 긋다가도, 이렇게 불쑥 이국이 떠오르곤 한다.

2009.7.21 명동


댓글

빨강머리앤 : 그때…동생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셨던가.. 루이비똥 아줌마들이 득시글하다공.. ㅎㅎ (2009-08-26 05: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