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센 한달

박제권
회사에서 파는 SDK 강의문서를 내부소스 봐가면서 작성하고, 다들 계륵으로 여기는 PIMS 하나를 수선하고 있다. 코딩이란건 하기 전에는 하기 싫다가도, 소스를 보게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게 만드는 묘한 녀석이다. 덕분에 첫달 네번 밤샘을 하고 토,일요일에도 몇번인가 출근해버렸다. 이렇게 일하지 않기로 결심 같은 걸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일단 사무실에 등장을 했으면, 저 인간이 일 좀 하는 것 같다. 라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과도한 눈치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한달동안 잘 달린 끝에 연구소장과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느낌이다.

강의 성공

박제권
오늘 꽤 큰 기업에 가서 이번에 입사한 회사의 SDK 를 강의했다. 그런대로 성공적이었고, 참석자들 중에 부장급이나 과장급들이 하는 질문도 그런대로 잘 받아쳤다. PPT 가 88페이지 짜리였으니 강의 질이 안좋더라도 양으로는 그럴싸해보였다. (앞으로 200페이지정도로 늘려갈 예정이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파일 뷰어를 폰에 올리는 정도 뿐인 상태에서 잘도 아는 체를 하고 왔다. 아직 옆 팀에서 만들고있는 휴대폰의 내부까지 속속들이 알고있는 건 아니다. 질문을 받아친 것도 그동안 주워들은 이야기들일 뿐.

조엘 온 소프트웨어

박제권
다 아는 내용이지만, 글을 좀 재미있게 쓰는 편이기도 하고, 3년차 정도에게 추천할만 하다. “마이티컬맨먼쓰” 라던가 “코드 컴플리트” 라던가, 암튼 이런 따위따위 책들은 뭔가 얻을게 있을까 하고 매번 시도해보지만,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수필처럼 써버린 걸까. 5년이상 코딩해본 머리좋은 인간에게 일정 계산하라고하고, 그거 곱하기 3 하면 일정은 나오잖아? 그거 줄이려고 하면 그때부터 망하는 거고. 담배피러 오락가락 하는 것들 빼고나면 결국은 하루에 30줄 정도밖에 코딩한거 없더라, 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꺼고. 비슷한 글들을 읽었을 꺼고, 비슷한 고민을 했을꺼고, 비슷하게 당했을 꺼고, 그러니까, 비슷한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거겠지 뭐.

일에 파묻혀

박제권
완전히 빠져버렸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윈도우즈용 PIMS. MFC를 쓰고있는 이 녀석을 맥과 리눅스에서도 돌게 하는 것이 최종목표. 하지만, 멀티플랫폼 버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MFC버전의 버그 수정도 해야한다. BTS에 하루에 일곱개 정도씩 버그리포트가 올라오고 있다. 뭐, 일단은 쳐다보고만 있는데 있는데 그 이유는 두번째 임무때문. 이 회사에서는 휴대폰용 리눅스를 만들고 있고, 그 녀석 위에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들을 위해서 SDK 를 만들어 배포해버렸다. 하지만 아직 SDK 문서는 이쁘장하지 않다. 문제는 이 SDK 를 중국어를 쓰시는 분들께서 구매해주셨는데, 문서가 이쁘지 않으니, 강의를 들어야겠다고 했고, SDK 를 제대로 알고있는 모든 인간들은 중국이나 수원에 내려가 계시기 때문에 금방 입사한 내게 그 임무가 떨어진 것.

게으른 엔지니어

박제권
코더는 조로한다, 고 했다. 마흔도 못넘기고 이미 넘을 산들은 모두 넘어버렸다는 허탈감에 빠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더 이상은 디스크에서 DLL 파일들을 하나 하나 지우면서 희열을 느끼지도 못하고, 왜 어떤 놈은 0xDDDDDDDD 고 다른 놈은 0xCDCDCDCD 인지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둘다 밸리드하지 않을 뿐이다. 언제나 회사를 옮기고 며칠만 지나고 나면 팀원들이 바보같다는 푸념을 했었는데, 이 회사에는 쓸데없는 일에 자신을 소모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인간들만 모여있다. 리눅스는 그런 인간들의 작품이다. 심지어는 나랑 같이 시작했을 법한 나이의 아저씨들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구직 작전 완료

박제권
구직 작전이 완료되었다. 대림역에서 갈아타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곳, 연봉은 많이, 간부는 아니고,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거나, 혹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 그리고, 주식을 준다거나 하는 말 대신 현금보유액이 확실한 곳. 그런 기준이었다. 이제는 가능성으로 치장한 곳에서 미래를 보고 일하는 것은 불가. 가능성도 있고, 돈도 있어야 다달이 월급이 나올 테니까. 어쨌든, 이번에도 아는 사람 하나밖에 없는 회사에 들어갈 뻔하다가, 결국 아는 사람들로 꽉 찬 회사에 들어왔다. 나는 모험심이 부족한 인간인 것 같다.

4월 여행 (나)

박제권
방콕의 짐톰슨 하우스앞에 있는 연못과 까페입니다. 한가한 동넵니다. 댓글 고선영 : 안녕하세요. ^^ 잘 지내시져? 위세 사진은 진짜 한가하고 좋은데.. 아래 사진이 공기오염을 시킬것 같은 생각이. ㅋㅋ (2005-04-20 10:45:34) 빨강머리앤 : 흠..역쉬 사진을 잘 찍으신다.. ^^ (2005-04-27 14:19:35)

4월 여행

박제권
4월 초에 또 다시 방콕-푸켓-끄라비-푸켓을 다녀왔습니다. 5박동안 빡쎄게 뛰었습니다. 사진은 팡아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 “맥” 과 “해지는 언덕” 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팡아투어를 나갔습니다. 항상 수줍어하는 맥입니다. 손님이 겨우 7명밖에 없어서 가이드들이 심심해 하더군요. 이런 컨셉의 사진들이 자꾸만 싸여가고 있습니다. (근데, 전 수영을 못해요. ^^) 팡아투어를 마치고, 프롬텝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저 자리는 제가 기타를 치면서 돈을 받아야 하는 자린데, 다른 아저씨가 서있더군요. 프롬텝. 해지는 언덕입니다. 함께 간 이들이 사진하는 분들이라, 해지는 언덕에서 한참동안 작품을 건지려고 앉아있었습니다.

입사지원

박제권
꽤 오래 놀았다. “짧으면 석달 길면 삼년” 이라고 옛날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던 것이 2003년 3월 27일이다. 놀기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 2003년 7월 4일이었다. 짧으면 석달 길면 삼년 2003年03月27日 한동안 쉬려고 합니다. 태극권과 독서.. 그리고, 잡념. 메일은 jinto … @ … chollian.net 으로 보내주세요. 전화는 02 - 867 - 9459 나.. 017 215 9459 로 해주세요. 직장 소개전화나.. 메일은 대환영입니다. 다만, 일을 하더라도 쉬는 기간이 끝난 다음에 어쨌든, 석달은 넘겼고, 삼년은 못 채웠다.

서울

박제권
평생에 얼마나 많은 “여행”을 하게될까. 기대된다. 될 수 있는대로, 많이 했으면 좋겠다. 출국전에 손에 든 돈은 착한아저씨가 보내준 10만원과 통장에 있던 9만원, 동생이 나중에 갚으라며 보내준 5만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중에 2만원은 방콕에 아는 분께 책을 두권 사드리라고 했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누구더라?) 의 “달”과 아사다지로의 “프리즌호텔 1권”. “프리즌호텔은 1권만 보면, 4권까지 몽땅 보고싶어지는 책이라 고문이 될꺼”라고 했더니, 다음에 나갈 때 한권씩 사다드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출국층의 서점에는 두권모두 없었다. 따라서, 무라카미류의 “69” 를 사다드렸다.

이번엔 짧게

박제권
내일 방콕-푸켓으로 일주일간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반년이나 다녀와 놓고서 또, 무슨 정신으로 이러는지는 말하기 힘들다. 나도 모르니까. 그저 가고 싶어지면 가고, 기회가 생기면 가기로 했는데, 실제로 그리 되었다. 사실 가고 싶은 곳은, 끄라비 아니면 빠이인데, 여행이 가능하도록 해주신 일행들이 “푸켓”을 선호하는 것 같다. 유럽인들이 두어달전에 호텔예약을 한다던가, 하는 것을 부러워해놓고서, 나 역시 출발 직전에야 예약을 집어넣었다. 방콕에서 19달러짜리 호텔을 찾아냈다. 라이브채팅인가 하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이메일로 받은 바우처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체크인 할때에나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생활

박제권
방콕에서 가장 걷기 힘든 곳은 스쿰빗이었다. 씨얌쪽이 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스쿰빗은 인도가 좁아서 걷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어디를 걸어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내 어깨를 치거나, 큰소리를 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한번은 카오산의 노점에서 죽을 먹는데, 바로 옆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었다. 우리는 꽤 안전하다는 느낌으로 계속 죽을 먹어대기만 했었다. 오늘 몇번인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짝을 쳐다보았다. 전처럼 화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쁜가보네.. 하고 한참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고.

MM 의 신화

박제권
아직도, 한사람을 더 추가하면 개발기간이 그 만큼 단축될 꺼라고 생각하는 오너들이 있다. 아직도. 개발자가 세명이었다가 다섯명으로 늘어나면 개발능력은 두명분만큼 증가하지만, 프로젝트의 복잡도는 두명의 제곱만큼 증가한다. 따라서, 예상 개발기간 내에 완료할 수 없게 되고, 오너는 화가나고,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팀은 해체되고 프로젝트는 드롭된다. 그래서, 프로젝트 일정을 못맞추게 되면, 원래 계획했던 기능중에서 안될 것들을 빼버리는 게 정답이라고 오래전에 브룩스 아저씨가 원서에 써놨었다. 바이블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소프트웨어 공학을 창시한 아저씨였는데, 아무도 안읽는 것 같다.

태국여행의 끝에

박제권
조용한 동네에 갔었다. 남은 돈을 모두 써버리겠다는 심정으로 갔지만, 사실 돈은 별로 남지 않았었다. 자연주의 컨셉의 호텔이었다. 자연주의를 추구해서인지, 관리를 안해서인지, 벽에는 쥐구멍이 있었고, 쥐도 있었다. 귀여운 얼굴을 드러내면서 나와 친해지려했다. 사진은 2층 테라스에서 찍은 것인데, 나무들이 키가 컸다. 저 대나무로 만든 듯한 벽에 쥐구멍과 쥐가 있었다. 호텔안의 길은, 여기가 빠이인가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있었다. 여기는 호텔 근처 바닷가. 푸켓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직항은 쓰나미때문에 중단되었다. 따라서 방콕으로 올라갔다가, 항공권을 구해서 들어오기로 했다.

여행후에

박제권
다섯달을 여행했는데 뭔가 얻은 것, 혹은, 변한 것은 없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귀국후에 처음 업계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 선배가 물었다. “여행하면서 좀 얻은 게 있나?”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별로 얻은 것도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걸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뭐, 그냥, 여행한거죠.” 선배는 말했다. “여행 제대로 했군.” 나중에 생각해보니, 꽤, 그럴싸해 보이는 대답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 앉아있을 때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면, 자연스레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바뀐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적응하기

박제권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로 일주일넘게 주변사물들이 모두 모두 환상으로만 보였었다. 태국여행의 마지막에 푸켓에서 들은 생존 경험담들 때문이었을까. 귀국 비행기를 타기전에 가끔씩 한밤중에 깨어나곤 했었다. 어린애들이 처음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때에 겪게 되는 혼란과 깊은 고독 같은 것을 끄라비의 호텔에서 한밤중에 느끼곤 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의 다섯시간은 너무 답답해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비행기를 못타겠구나, 싶었다. 그게 폐쇄공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구로동의 내 집에 돌아와서 다섯달만에 내 방에 들어섰을 때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에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환상일 뿐이고, 내 등뒤에는 까만 암흑만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었다.

서울

박제권
드디어 서울입니다. 금요일 새벽에 도착했는데, 집에 컴퓨터가 맛이 갔기도 했고, 바깥 날씨가 너무 춥기도 했고, 또, 아직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서야 코엑스몰 반디앞에 있는 컴퓨터에서 귀국신고를 합니다. 이런 긴 여행은 후유증이 심각하다고들 말씀해 주시는데, 정말 심각합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 가끔씩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어쨌든, 여기는 “서울”입니다. 저, 돌아왔습니다. 댓글 만박 : welcome back! (2005-01-24 21:58:30) 와리 : 살들이 늘어났다가 바짝 긴장하고 있겠군요. 잊혀지지야 않겠지만 잘 적응할거라 봅니다.

앙코르왓 - 끝 (캄보디아)

박제권
여행을 시작할 때는 매일 매일 쓴 돈을 계산하고 정리했었다. 하지만, 넉달을 넘기게 되니까,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쓴다, 는 정신으로 생활하게 된다. 숙박은 서울가든에서 했고, 저녁식사도 가급적 서울가든에서 해결했다. 저녁은 불고기를 주로 먹었는데, 뭘 먹어도 4달라에서 5달라 사이였다. 앙코르왓을 보고 싶다면, 가기 전에 먼저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왓” 이란 책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가기 전에 다 읽기에는 좀 지루하지만 읽을만 하다.

앙코르왓 - 7 (캄보디아)

박제권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여동생이다. 말했나? 앙코르왓 여행은 힘든 거라고? 우리는 이틀째부터 일정을 확 바꿔서 (어차피 이전에도 서울가든에서 주신 일정표와는 따로 노는 일정이었지만) 대강 대강 놀기로 했다. 지붕이 열리는 봉고였다. 이게 얼마더라? 기본적으로 앙코르왓은 “국립공원” 이다. 게다가 개발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농촌 한가운데에 있는 폐허. 공기가. 공기가 너무 맑았다. 앙코르왓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돌무더기네 어쩌네 하는 말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거기 공기가 맑았다는 점이다. 새벽에 일어나 천년전에 지어져서, 몇백년동안 밀림속에 버려져있다가, 겨우 얼마전에 발견된 폐허를 찾아가서, 빵을 먹는다.

앙코르왓 - 6 (캄보디아)

박제권
타프롬. 요기는 영화에 나왔던 바로 거기 계속 그곳. 앙코르 여행은 꽤 힘들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여행자다운 자세. 동생이다. 저건 뿌리라기 보다는 “손”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프놈바켕 저녁때는 석양이 이쁘고, 높은 곳이라 앙코르왓이 보인다는 “프놈바켕”에 올라갔다. 프놈바켕이다. 내 머리에 가마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일곱배정도 줌으로 땡기면 이렇게 보인다. 사실은 굉장히 작아서 앙코르왓이 보여요, 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몇백년전의 유적지에서 달을 찍었다. 어쨌든 여기는 폐허. 달과 어울렸다. 선셋을 대강 봐주고 내려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