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에 갔었다. 남은 돈을 모두 써버리겠다는 심정으로 갔지만, 사실 돈은 별로 남지 않았었다. 자연주의 컨셉의 호텔이었다.
자연주의를 추구해서인지, 관리를 안해서인지, 벽에는 쥐구멍이 있었고, 쥐도 있었다. 귀여운 얼굴을 드러내면서 나와 친해지려했다. 사진은 2층 테라스에서 찍은 것인데, 나무들이 키가 컸다. 저 대나무로 만든 듯한 벽에 쥐구멍과 쥐가 있었다.
호텔안의 길은, 여기가 빠이인가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있었다.
여기는 호텔 근처 바닷가.
푸켓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직항은 쓰나미때문에 중단되었다. 따라서 방콕으로 올라갔다가, 항공권을 구해서 들어오기로 했다.
다섯달을 여행했는데 뭔가 얻은 것, 혹은, 변한 것은 없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귀국후에 처음 업계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 선배가 물었다. “여행하면서 좀 얻은 게 있나?”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별로 얻은 것도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걸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뭐, 그냥, 여행한거죠.” 선배는 말했다. “여행 제대로 했군.”
나중에 생각해보니, 꽤, 그럴싸해 보이는 대답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 앉아있을 때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면, 자연스레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바뀐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로 일주일넘게 주변사물들이 모두 모두 환상으로만 보였었다. 태국여행의 마지막에 푸켓에서 들은 생존 경험담들 때문이었을까. 귀국 비행기를 타기전에 가끔씩 한밤중에 깨어나곤 했었다. 어린애들이 처음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때에 겪게 되는 혼란과 깊은 고독 같은 것을 끄라비의 호텔에서 한밤중에 느끼곤 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의 다섯시간은 너무 답답해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비행기를 못타겠구나, 싶었다. 그게 폐쇄공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구로동의 내 집에 돌아와서 다섯달만에 내 방에 들어섰을 때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에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환상일 뿐이고, 내 등뒤에는 까만 암흑만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었다.
드디어 서울입니다. 금요일 새벽에 도착했는데, 집에 컴퓨터가 맛이 갔기도 했고, 바깥 날씨가 너무 춥기도 했고, 또, 아직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서야 코엑스몰 반디앞에 있는 컴퓨터에서 귀국신고를 합니다.
이런 긴 여행은 후유증이 심각하다고들 말씀해 주시는데, 정말 심각합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 가끔씩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어쨌든, 여기는 “서울”입니다.
저, 돌아왔습니다.
댓글
만박 : welcome back! (2005-01-24 21:58:30)
와리 : 살들이 늘어났다가 바짝 긴장하고 있겠군요. 잊혀지지야 않겠지만 잘 적응할거라 봅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매일 매일 쓴 돈을 계산하고 정리했었다. 하지만, 넉달을 넘기게 되니까,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쓴다, 는 정신으로 생활하게 된다.
숙박은 서울가든에서 했고, 저녁식사도 가급적 서울가든에서 해결했다. 저녁은 불고기를 주로 먹었는데, 뭘 먹어도 4달라에서 5달라 사이였다.
앙코르왓을 보고 싶다면, 가기 전에 먼저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왓” 이란 책이 그런대로 볼만했다. 가기 전에 다 읽기에는 좀 지루하지만 읽을만 하다.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여동생이다.
말했나? 앙코르왓 여행은 힘든 거라고?
우리는 이틀째부터 일정을 확 바꿔서 (어차피 이전에도 서울가든에서 주신 일정표와는 따로 노는 일정이었지만) 대강 대강 놀기로 했다.
지붕이 열리는 봉고였다. 이게 얼마더라?
기본적으로 앙코르왓은 “국립공원” 이다. 게다가 개발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농촌 한가운데에 있는 폐허. 공기가. 공기가 너무 맑았다.
앙코르왓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돌무더기네 어쩌네 하는 말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거기 공기가 맑았다는 점이다.
새벽에 일어나 천년전에 지어져서, 몇백년동안 밀림속에 버려져있다가, 겨우 얼마전에 발견된 폐허를 찾아가서, 빵을 먹는다.
타프롬.
요기는 영화에 나왔던 바로 거기
계속 그곳.
앙코르 여행은 꽤 힘들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여행자다운 자세.
동생이다.
저건 뿌리라기 보다는 “손”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프놈바켕
저녁때는 석양이 이쁘고, 높은 곳이라 앙코르왓이 보인다는 “프놈바켕”에 올라갔다.
프놈바켕이다.
내 머리에 가마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일곱배정도 줌으로 땡기면 이렇게 보인다. 사실은 굉장히 작아서 앙코르왓이 보여요, 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몇백년전의 유적지에서 달을 찍었다. 어쨌든 여기는 폐허. 달과 어울렸다.
선셋을 대강 봐주고 내려와 버렸다.
앙코르왓의 정문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뒤편으로 “앙코르 까페”란 곳이 있다. 음식도 깔끔하고, 11시까지인가 조식 메뉴가 있었다. 싸다. 그곳에 있던 고양이다.
시간이 남는 것 같아서, 앙코르왓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사방에 이런 아가씨들이 새겨져있다. “데바다”라고 했다.
여기는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곳. 실제로 도서관이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쉬기에 정말 좋은 장소였다. 현지인들도 여기저기 누워서 자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뜨거운 곳을 거닐다가, 가끔씩 쉬기위해서 그 먼 흙길을 달려왔다.
이번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다. 역시 사원의 중심에는 부처님이 있었다.
다음날 투어의 시작은 빡세이 참끄룽. 이름도 이상하지.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루니가 쓴 책에는 뭐라고 되어있긴 한데, 기억나진 않는다.
“빡세이참끄룽”이라는 사원이다.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스타마트에서 샌드위치인지 햄 버거인지를 사서 이곳 오래된 폐허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빡세이 참끄룽에서 아침을 먹는다. 정말 공기가 맑았어.
앙코르 톰
앙코르 톰 남문.
이렇게만 보면 뭔가 섹슈얼한 느낌의 조각들이지만, 사실을 우유의 바다를 젖는 중이라고 했다.
앙코르 톰에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생활상이 새겨져있다고 했다. 그중에는 애기를 낳는 산모도 있다고 해서 한참을 찾았다.
저녁다섯시에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3일짜리 표를 사면 그날 저녁부터 쓸 수 있다고 했다. 해서, 저녁때 앙코르왓에 가보았다.
여기가 바로 앙코르왓이란다.
저 손가락 같은 것은 “나가”다. 나가.
나가는 뱀이다. 부처님이 수행하실 때에 자기 몸으로 감싸서 보호해드렸다던가하는 뱀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눈으로 마주대하고 나면, 도저히 올라갈 마 음이 생기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굉장히 많이 가는 곳이고, 왠만해서는 사고가 나지않는다 고 믿고싶겠지만, 사고가 난다. 발목을 크게 다친 사람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올라가고 나면, 일종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방콕은 태국의 수도. 전승기념탑인지 민주기념탑인지 근처에 있는 섹소폰이라는 라이브 까 페에 갔었다. 이 친구, 후까시가 굉장하지 않은가?
이날 태국의 국왕께서는 70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나는 업소에서 일하면 귀에 안좋다더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 덕분에 짭새들이 잘나가는 업소만 골라서 단속을 하러 나왔었다. 연주 자들은 약간 짜증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단속이 끝나고 난 후에는 더 큰소리로 연주를 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태국은 이 동네에서는 제일 잘나가는 나라다. 미얀마라던가, 라오스 라던가, 캄보디아라던가. 그런 곳에 가보면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앙코르왓에 갔었다.
다들 여기서 찍는다는 포인트를 찾아갔다. 왼편 호수의 끄트머리.
나도 찍었다.
신혼부부도 옆에서 찍고 있었다.
여행기, 라기보다는 그냥 사진첩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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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앤 : 늦게 올리네..하긴 난 올리지도 않았당..쩝 (2005-01-13 05:19:47)
새벽에 한번 깨어나서 꿈인지 생신지 모를 격렬한 경험을 하고서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는 열두 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눈을 떴다. 하루키식으로 꼼꼼하게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온몸을 씻었다. 식당에서 대강 밥을 먹고는 집을 나섰다. ‘오이’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썽태우 터미널이 있는 딸랏쏫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썽태우를 타고서 카론 비치에 갔다. 방을 나서기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챙겼었다. MD는 깜빡했고, 카메라는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
멀리 있는 이들은 이곳의 인간들이 계속해서 슬픔에 젖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정홍보처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라 함은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신이 피곤해지는 종류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젠가 그젠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도착했다. 헌데, 날아오기 전에 복장통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덕분에 “알록달록 봉사단”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이쪽에서 얼핏본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를 보고서 저거다, 저거로 통일하자, 라고 결심했나보다. 이런 때 입기에는 기막히게 딱 맞는 옷일 것 같긴 하다.
좋아. 입을 수 있게 해주자. 서울에 국정홍보처 모 과장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안받는다. 전화를 안받길래, 동절기?
어제 사진을 받아서 프린트했던 실종자 한분이 다행히도 다른 쪽으로 여행루트를 바꾸고, 살아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방에 소식을 알렸다. 이미지를 바꾸고, 편집하고 프린트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살아있다니 많이 기뻤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저 방콕에서 항공권을 구하고 있는 줄로만 아신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함에도, 크게 걱정하고 계실까봐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방금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나간 것 같다. 사정을 설명했으니 알아서 처리해주겠지만 그래도, 잘 믿음이 안간다.
푸켓은 고급휴양지, 하루에 160만원이나 하는 숙소도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개발되어왔고,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기반시설이 꽤나 잘되어있는 편이다. 병원도 외국인들만이 드나드는 꽤 비싼 병원도 있다. 전에 발목에 종기가 났을 때, 나도 이용한 적이 있는 “방콕-푸켓 병원”이 외국인들을 위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들 모두 영어를 굉장히 알아듣기 쉽게 발음해서 기분좋았던 그 병원. 내 발목의 종기를 수술했던 응급실에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응급실은, 난, 다시는 가고싶지 않아졌다.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하루를 지내고나니, 왜 의사들이 수술중에 농담따먹기를 하고,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지 알게되었다.
원래는 오늘부터 항공권을 구해서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랬습니다. 헌데, 며칠만 더 있어야 할 듯 합니다.
걱정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오늘에야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 코창에서 나와서 방콕에 도착했더랬습니다. 저와 동생이 머물던 코창은 태국 동쪽 해안이라서 해일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어찌 어찌 전해듣긴 했었는데, 방콕나오면서 신문이랑 방송을 보니까, 너무 피해가 심하더군요.
별일이 없는가 하고, 푸켓쪽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과 선라이즈에 전화해보니, 한국인 여행자들의 소식을 확인하고, 병원이랑 시청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이미, 한국으로 들어간 상태라면 모를까, 아직 방콕에 있는 상태면서 모른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는 씨엠립.
캄보디아에 왔다. 한번은 봐야한다는 생각때문에 이번에 질러봤다. 앙코르왓. 좋다. 한번은 봐야 할 곳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온 것이 다행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은데, 꽤 힘들어하실 것 같다.
내일까지 있다가, 다시 방콕으로 나가서 아란-뜨랏-코창으로 가려고 한다. 동생이 한번은 바다를 찍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관계로.
이상.
댓글
warry : 뉴스보고 깜짝 놀랐어요. 해일로 인해 별일 없으신지.. (2004-12-26 12:25:01)
hanti : 저도 지진+해일 소식 때문에 걱정되어 왔는데… (아직도 태국에 계신가 착각) 캄보디아에 계시니 안심입니다.
I’m in Donmooang airport, waiting my sister. I’m staying at Sam’s Lodge in sukumvit soi 19. FY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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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cet : Don’t you come to NANA Plaza in BKK? I bet you’d like that place with pleasure. Good luck. (2004-12-19 22:59:59)
자, 이제 방콕으로 갑니다. 식객생활을 받아주신 푸켓썬라이즈 큰조이님이랑 둘째조이님, 그리고 카놈찐님께 많이 많이 감사드립니다. 그저 워드파일을 조금 작성해드리고, 홈페이지에 글몇개 올리고, HTML 태그좀 봐드리는 정도.. 그 정도 일을 해드리는 거로, 임시직원 비슷하게 대우해주셨습니다. 해변에 나갈 때도 데리고 나가시고…
여행사 일이 어떤 일인지 대강은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정말 힘든 일이더군요.
이제 방콕으로 가서 동생과 소녀님을 만나고, 삼일동안 럭셔리한 방콕투어를 진행합니다. 저는 방콕은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