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이야기

일대일

박제권
회사 메신저에서도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이 편했다. 그러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고나서야, ‘저는 그 이슈에 대해 모릅니다. 알려주세요.’ 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정도도 못 쫓아간다면,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어진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문제를 알아차린 후에는 개인 채널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려한다. 하지만, 빠르고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많이 불안하다. 그런건 노력한다고해서 금방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불안을 느끼고 있구나’ 라고 바라보는 것이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밤의 대화

박제권
오늘도 아들과 둘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 먹이기, 숙제, 이닦기까지 해결하고 재우기 미션을 수행하는데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라는 문제를 주심. 아들아… 그건 나도 잘 모른단다. 가끔 잠자리에서 엄마한테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는데, 나한테 직접 물어오니 뭐라도 얘기는 해야했다. “아들, 얼마 전에 이빨하나 빠진 적이 있었지? 그거 빼기 전에 며칠동안 계속 치과 갈 걱정만 했었지? 그리고는 어이없게 쑥빠져서 허탈하게 웃었었지? 걱정할 때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기억하니? 빠지고 나서는 어떤 느낌이었지? 빠질 당시에 느낌을 보면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였지?

진전

박제권
이제 건대까지. 긴장도 안하고. 우마이도, 겐로쿠, 모스버거, 놀부부대찌개 따위를 방문하였다. 대공원에 있는 까페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일하기도 한다. 가끔 시끄러워질 때가 있지만, 우리 동네 다방들에 비하면 정말 일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결계를 더 확장하는 중이다. 그제는 성수동까지 걸어가 보았다. 요즘 인기있다는 성수동의 공장 개조 까페 어니언. ‘예전의 나’를 떠올려보면 분명 좋아할만한 까페인데, 어쩐지 땡기지 않는다. ‘네가 좋아하는거 이런거지?’ 라고 딱 꾸며놓은 것 같아서 싫은가보다.(응?) 오히려 컨테이너를 덕지덕지 쌓아놓은 커먼그라운드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사랑받기위해, 사랑하기위해

박제권
오늘도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에 신경질을 내며 산보를 했다. 도대체 왜 이 좁은 길에서 커브를 틀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가. 골목의 좁은 하늘에 떠오른 빨간 십자가들이 보인다. 잡스런 생각도 떠오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 올바른 선택을 했더라면 헬조선이란 말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TV에서는 중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뭔가를 얘기한다. 우리 사는 동네 뒷골목이 얼마나 개판인지, 도대체 어찌해야 이게 좀 괜찮아질지, 그런 고민좀 했으면 좋겠다.

애자일 체험

박제권
요즈음, 어쩌다보니 6명의 개발자가 느슨한 팀의 형태로 동네 커피숍에 모여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중 네 분이 애자일 코칭 과정을 마친 분들입니다. 관심은 많았지만 사정상 참여 못했던 코스라, 과연 그 졸업생들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궁금했더랬습니다. 호기심이 채워질 찬스죠. 조금 경험해본 후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 일하더라 라는 포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제가 변한 부분이나 제가 얻은 교훈 따위를 정리해두는게 더 의미있을 듯 합니다. 이 팀이 하는 일은 두가지인데, 제가 담당하는 부분은 소스 파일 수가 1800개 정도인 자바 프로그램을 분석해서 한가지 기능을 수정하는 거였습니다.

달라진 건 생각뿐

박제권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서는 한참동안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듯 이를 흔들어보더니, 아빠도 이를 뽑은 적이 있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줬는데, 그때부터 이 뽑을 생각에 덜컥 겁이 났나보다. 이불속에 들어가서 울어제끼는데, 너무 울어서 엄마가 안고는 한참을 달래주어야 했다. 달래주고 나서도 훌쩍거리면서 병원에 가야하는지, 안뽑으면 생긴다는 덧니는 어떤건지, 계속 물어본다. 아이의 생각이 이뽑으러 가야한다는 걱정에 가로막혀서 아무리 달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챙김을 시켜보자는 생각에,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걸 생각해볼래?

마음챙김 찬양하세

박제권
마음챙김 명상이 마음의 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MBSR 코스를 수료한지 2년정도 지난 후에야 확신하게 된다. 지금 떠오른 어떤 것이 ‘생각’에 근거를 둔 것인지 ‘현실’에 근거를 둔 것인지 구분하는 어찌보면 당연한 능력이 점점 더 강화되는 순간들이 있다.

한밤의 비발디

박제권
서른 두살 즈음. 직급같은 걸 달고 미팅에 나다니다가, 처음으로 외부 인사들과 밥먹던 때가 기억난다. 처음 만난 다른 회사 사장이나 이사들과 굳이 밥까지 먹어야 하는걸까 생각하며, 전혀 소화되지 않는 무언가를 씹었던 기억.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코딩만 하면 안될까요’ 그때 우리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자꾸 먹다보면 괜찮아져.’ 얼마전 처음보는 회사의 어린 코더와 밥을 먹을 때, 그의 눈에서 당시의 내 눈빛을 발견했다. 내가 저랬겠구나 생각이 들어 말해줬다. ‘자꾸 하다보면, 그냥 하게되요.’ 심지어 맛있게 먹게되기도 하고, 신나게 떠들게 되기도 하지.

세상 저편에 무엇이 있나

박제권
지 애비를 닮았는지 밥먹고 곧바로 누우려는 6살짜리 아들을 꾀어서 동네 까페에 갔다. 페인트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장개업 까페에서 ‘와플’이란 것을 시켜주고, 나는 대추차를 먹는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서 이런 책을 발견했다. 세상 저편에 무엇이 있나,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내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가 발사한 총알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시절이었다. 불과 몇해전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면도를 하다 턱에 자란 흰수염에 절망하기 시작하고 대출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신문 주식면에 슬슬 눈길이 가고 연락이 안되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고 점집에 들락거리고 이것저것 잡스런 취미도 갖게 되면서부터

원효

박제권
지금까지 읽었던 불교관련 책들… 법륜스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한번에 정리가 되었다. — 2011.3.15 추가 — 지금은 동영상이 삭제되어 볼수가 없군요. 법륜스님 말씀을 채록해서 올립니다. 채록한 부분은 원효대사의 깨달음에 대해 법륜스님이 설명해주시는 부분입니다. 물은 똑같은 물이고 바가지는 똑같은 바가지인데, 어제는 감로수와 같았는데 지금은 더럽다고 토했다 하는 것은, 이 더럽고 깨끗함이, 이 물에 있거나 바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속에 있구나. 그러니까, 일체유심조라는 것이, 뭐… 바가지를 금이라 하면 금이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이 더럽고 깨끗하다 하는 우리들의 이런 분별이, 존재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인식속에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자각을 하게 되는 거죠.

REWORK, 37 시그널의 새 책

박제권
REWORK를 읽었는데 GettingReal도 그렇고, 러셀의 의견도 그렇고, 요즘의 내 고민에 딱 맞는 조언들이다. 사실 내 고민은 몇년째 동일하다. “어떻게 살지?” 가치있다고 느껴지는 일을 해라. 우주에 너만의 흔적을 남겨라.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지금 해라. 나중이란 없을 것이다. 그날이 금요일이면, 주말을 포기하고 작업을 해라. 반짝이는 그 순간에는 2주짜리 일도 2일만에 끝낼 수있다. 하이쿠를 떠올려라. 제한을 가하면 창조적이 된다. 넣고 싶은 기능을 “전부”, “완벽하게” 넣을 수는 없다. 한가지 기능을 만드는 것도 잘하려고 생각하면 꽤 힘들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생각인가

박제권
Stress is never caused by life circumstances, but instead it originates in the thoughts that we have, and whether or not we believe them. 스트레스는 결코 우리가 겪는 사건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는지에, 그리고 우리가 그 생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발생한다. - lifehacker(link) 위빠싸나를 배운 후에는 모든 경험이 위빠싸나 관점에서 보게된다. 저 문장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위빠싸나를 배운 이유가 불안, 공황증세에 대처하기 위해서였었고, 관련 서적을 읽다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소시킬지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 있으면, 눈에 확 들어왔었다.

민주주의의 생물학적 뿌리

박제권
TODO: 아돌프 포르트만 찾아서 읽어볼 것. 스위스의 동물생태학자 아돌프 포르트만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조기 출산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인간은 태어나서 한살이 돼야 비로소 다른 포유류들이 태어날 때와 비슷한 발육 상태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임신 기간이 21개월이 돼야 다른 동물의 새끼처럼 태어나서 곧 걷기 시작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데, 사람의 자식은 지나치게 짧은 임신 기간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히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제대로 성장하려면 아기는 태어난 뒤에도 일년 정도는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 있어야 한다.

자동 번역 국가

박제권
십년쯤 전에 KS와 JIS가 오자까지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제 시사인에서 일본의 형법을 번역기로 돌리면 한국의 형법과 99%동일하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이 나라가… 우리나라인가? 우리, 고민없이 살고 있다. 나나, 국가나.

두 마리 개

박제권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제자가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제 안에는 마치 두 마리 개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마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온순한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아주 사납고 성질이 나쁘며 매사에 부정적인 놈입니다. 이 두마리가 항상 제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이 이기게 될까요?” 붓다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짧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다.”

이런 꿈을 꾸었다

박제권
이런 꿈을 꾸었다. 반쯤 지하로 들어간 묘한 구조의 집에서 살던 우리는, 집처럼 묘한 가족 구성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식구 모두를 위해 준비한 저녁 식사자리에도 끼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그 집에는 그런 문제말고도 여러가지 다른 문제들이 있었는데, 나는 저녁을 먹다말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를 만났다. 여자인듯한 그 친구가 이끌어 주어서, 다른 여러명의 낯설지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사는 그 조그만 도시가 바라보이는 산으로 올라갔다. 산의 정상근처에는 떡볶이 노점상이 있었는데, 노점상이 보일 때즘 친구는 우리에게 모두 하나씩 근처의 물건을 집으라고 말했다.

배움의 가장 큰 원천은

박제권
오늘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Your most unhappy customers are your greatest source of learning. - Bill Gates 라네요. 실패를 붙잡고 후회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걸 전진의 기회로 삼으라는 거지요.

MBSR 수업중 메모

박제권
오늘 수업에서 기억나는 것을 적어둔다. 얼룩말 얼룩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사자에게 공격당해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죽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쫓기는 동안이나 죽어가는 동안 얼마나 강한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너무 생생하게 떠올리지는 말자.) 원래 투쟁 혹은 도피, 라는 스트레스 반응은 이럴 때 필요한 장치였다. 위협과 도전 스트레스란 “내가 위협으로 인지하는 것” 이라고 했다. (로버트 새폴스키?) 얼룩말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만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사람.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보고 살짝 웃기만 해도, 혹시 나를 비웃는 건가, 의심하기도한다.

티셔츠 경제학

박제권
원제는 “The travels of a t-shirt in the global economy”. 직역하면 “한장의 티셔츠가 지구 경제권을 돌아다닌 여행기”라고 하겠다. 번역서 제목은 “티셔츠 경제학”. 우선, 번역이 깔끔하다. 읽기 편했고, 원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번역해주었다. (이렇게 하는게 정말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이 책을 잡은 이유는 최근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논지와 현장에 적용했을 때의 현상에 대해 궁금해졌기 때문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어쩌다 어느 블로그에서 봤는데 제목이 그럴싸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블로그에서 봤는지도 까먹었다. 요즘 이렇다.

공부도둑

박제권
데드라인이 걸려있는 일을 할 때, 전처럼 마음을 졸이며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러 그 일과 관계없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산보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이번에는 장회익의 “공부도둑”을 읽는다. 70살 할아버지다. 글 잘쓰셨다. 읽다보면 미뤄두었던 문제가 가끔 떠오른다. 어려운 문제들이다. 나는 아직 감곡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면 내가 미적분을 이해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이제는 아버지께 미적분을 가르쳐드릴 수도 있다고 말씀드릴 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경쟁상대로서 아버지를 넘어서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고, 아버지는 이제 나한테 즐겁게 져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