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대하여. 봄여름가을겨울)
작년 7월4일에는 첫번째 블로그를 올렸고, 서울역사박물관에 갔었다. 우연인지 오늘 낮에도 앙코르왓전시회를 보기위해 다시 같은 박물관을 찾았다. 앙코르왓. 가고싶은 곳이다. 7월4일은 용산에서 매년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는 날이고, 음력으로 7월4일은 나의 생일이며, 다시 양력으로는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어쨌든, 다시 7월 4일이 된다. 작년 7월4일의 첫 블로그이후, 600개의 엔트리를 생성했다. 모든 로그를 하나의 워드파일에 담으려는 시도는 데이터가 너무커서 실패했다. 그래도 꾸준히 시도해본다. 가끔은 중독되었다, 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무서워하기만 했었다. 어느날인가 마루, 라고 할만한 곳에서 자고 있던 날이었다. 추워보였을까.
아버지는 나를 안아서 방으로 들여놓으셨다.
아버지 팔에 안겨있던 어느 순간 나는 잠이 깨버렸지만, 어머니와 두분이 속삭이시는 대화를 들으며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순간에 조금은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 그때 내가 눈을 살며시 뜨고는 아버지를 향해 웃어주었었더라면, 하고 문득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웃어드릴 수는 있겠지만,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서 그 아이의 따뜻한 미소를 보는 일은, 이제 아버지로써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제 TV에 잠시나왔던 금타화상의 금강심론을 살펴보았다.
月半徑(월반경) 216이란 이를 平均(평균)한 것이며 月底半徑(월저반경)과 等(등)한 月半高(월반고)인 360의 과 가 力點(역점)이 되어 木星(목성)과 地球(지구)사이의 力線(역선)을 죄어 맴과 同時(동시)에 力點(역점)을 半徑(반경)으로 한 力帶(역대)의 길이가, 月(월) 自體(자체)의 廻轉(회전)에 따른 月途(월도)에 있어서의 準尺(준척)이 되므로 그것이 錐?(추유)의 形(형)임은 前後(전후)가 合致(합치)하며 비록 斥力(척력)이 强(강)한 月(월)이라 할지라도 引性(인성)이 풍부한 日身(일신)에서 長期間(장기간)을 要(요)하여 抽出(추출)된 形貌(형모) 자체가 月(월)의 火性(화성)임을 象徵(상징)하고 水性(수성)인 日球(일구)의 圓相(원상)과 配對(배대)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수리, 물리, 주역, 불교에 정통하셨던 분이라하는데…
이틀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허물없이 대해주었다.
그들은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거쳐서 거기까지 갔으리라. 가끔은 유치해보이기도 했지만, 돌아서 생각하면, 사실… 타자가 보아 유치하지 않은 고민이 어디에 있겠나. 거기에서의 이틀동안 진지한 고민 같은 것을 하지못했다. 산책하기 좋았던 소쇄원도 사실 관광지화 되어가는 것 같았고, 어쩌면, 삼성이 만들었다는 희원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보였다.
오히려 깊은 생각에 적절한 때는, 지리산 자락에서 새로 사귄 이들과 술을 마신 후, 숙소에서 누워, 멀리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와 산에서 풍겨오는 나무 향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저는 구로3동에 사는데요. 대림역하고 구로공단역 사이의 어디쯤입니다. 그런데, 이사와서 보니, 이 동네가 그리 잘사는 동네가 아니더군요. 공동화장실이란 것을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았으니까요.
전에 등본떼러 동사무소에 가보면, 아… 참 한심하다, 싶을 정도의 건물이 떡 서있었습니다. 미닫이 문이 달린 동사무소란 건, 영화에 세트로나 쓰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도 등본떼러 동사무소에 가보니, 동사무소자체는 그대로였지만, 그 근처는 완전히 도심과 다를바 없더군요. 한지역 전체가 싹 갈아엎어져서, 무언가 - 아마도 쇼핑센터 - 를 만들기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는 레미안 바로 앞이네요.
꿈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적어나가다 보면 내 마음속에 이렇게 많은 찌꺼기들이 남아있나 싶다. 십년이 넘어서, 이제는 다 잊혀진 줄 알았던 이야기들이 마음속에서는 호수밑바닥의 뻘처럼 엉켜있다.
그곳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 무시당한 기억, 잠깐 일어났던 바람 따위가 모두 모두 남아있다. 게다가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몇가지 희망 내지 욕망들도 솔직하게 들어있다. 중간에 그만둔 학교에 대한 미련따위가.
누가 실제로 살았었는가 혹은 신화인가에 따라서 우리가 받는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예수는 신화다“을 읽었을 때는, 역시 신화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실존인물이 아니며, 사도 바울에 의해서 당시 그 지방에서 유행하던 “헤르메스”신앙을 구체화 시킨 것이라는 주장이 왠지 음모론의 냄새를 풍겨서 꽤 마음에 들었었다.
원체 자기들끼리만 뭉쳐지내던 민족이라서, 기록하기 좋아했던 이집트(에굽)인 들의 기록에도 바다가 갈라졌다던가.. 장자들이 죽었다던가 하는 기록이 남아있질 않을 정도이니…
오늘 서기 62년 가을 (로마 건국 815년)에 로마인들이 주고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동생과 함께 일본식 주택의 2층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전형적인 일본식 창문을 통해서 1층의 모닥불을 지켜보고 있었다.
메텔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뒤에서 다가왔다. 우리를 밀치며 창밖을 구경하려 하였다. 아무런 사과나 미안한 표정이 없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 순간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남자친구를 한번 쓰윽 쳐다보고는 그녀를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의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내방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깨닫고 난 후에도, 내 어깨가 상상속의 그녀를 향해서 내질러 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종족이 있게마련, 요즘은 손놓은지 꽤 되었지만, 워크래프트스타를 할때는 항상 오크족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앵글로색슨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기사가 화제가 되고있다. 김도연님 블로그에도..
사방에서 코멘트들이 붙더니, 스노비즘이란 단어도 나오고, 시네큐브가 적자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나온다. 시네큐브.. 적잔가? 시네큐브처럼 자그마하고, 시시때때로 “그녀에게” 따위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인데.. “반지의 제왕”처럼 알려진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극장에서 그럴싸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걸 스노비즘 이라고 부르는군.
기분좋은 제안이지요? 노동윤리라던가, 각종이즘따위는 잊어버리고, 저처럼 딱 일년만 한심하게, 놀아보세요. 저요.. 이제 4월까지만 놀면, 딱 일년입니다.
짧으면 석달, 길면 삼년.. 놀겠습니다. 라고 사방에 선전을 해대고서 놀기시작했더랬습니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건 아니었고.. 오직 믿는 것은 실업급여 뿐!
얼마전에 모 정당 후보의 사무실에 잠시 적을 두고 있는 백수선배를 만났더랬습니다. 아직 운동기간이 아니라서, 개인 사무실에서 홈페이지만 관리해주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선배도 십년넘는 벤처기업 이사다니기에 지쳐 작년부터 쉬는 중이라던데. 선배의 말씀.
“직장생활로 40 이 되기전에 한번쯤은 크게 변할 일이 생기나봐.
밀양박씨말고도 박씨가 있는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연암박지원은 반남박씨다. 반남이나 밀양박씨는 6박 혹은 8박이라고 해서 잘나가던 집안에 속한다. 춘천박씨는? 우린 잘 못나간 박씨에 속한다. 하기야 춘천같은 산골에서 서울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못나간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고, 고려때는 잘나갔다.
박항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공부를 잘하시고, 승진도 잘하시고, 또 인품도 뛰어나셨다, 고한다. 하지만 유훈으로,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아!” 라고 말씀하셔서리.. 조선조에는 후손들이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지 않았다” 고한다. 못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투니버스에서 일요일에 일본의 5대 애니메이션 감독 시리즈를 해준 것 아시는지. “안녕 은하철도 999”의 감독 린타로를 해줬고, 다음에는 “하야오”를 해준다.
그 일요일을 시작으로, 이번주에는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프랑스와 오종을 몽땅 다 보기로 했다. 현재까지본 “바다를 보라”, “크리미널 러버”, “워터 드랍스 온 더 락” 까지 중에서 최고는 “워터 드랍스 온 더 락”.
소식 하나더 “하이퍼텍 나다” 에서는 작년에 못본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 지구를 지켜라, 질투는 나의힘,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 영매(!), 여섯개의 시선…
오늘의 명언.
“선거비용은 1250만원이었어요. 950만원은 제가 저축한거랑 적금든거로 해결했고, 나머지는 친구 세명이 기부해줬어요.” - 핀란드의 전 국회의원
1. 생태농업
전부터 관심있던 생태농업이 SBS 환경의역습 3부작에 나왔다. 이번에 이장의 생태농장 학습에는 일정때문에 못갈 것 같다. 시골의 공기가 그립다.
TV 화면에 나오는 돼지들은 엄청나게 귀여웠다. 저놈들 팔때가 되면 얼마나 마음아플까. 어쨌든 미생물을 이용해서 3년이나 돼지똥을 치우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항생제를 주지않아도 돼지를 잘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좋은 기술이다.
시골 한밤의 기억
1990년의 경희대 수원 교정은 밤이면 아주 깜깜해지곤 했다. 넓은 논이 펼쳐있어 띄엄띄엄 가로등이 보이는 그런 시골이었다. 바로 옆의 신갈호수 때문에 가끔씩은 짙은 안개에 파묻히기도 했었다.
아직도 술때문에 힘들어하곤 하는데, 그때는 신입생이 의례 거쳐야 하는 막걸리와 소주덕분에 하루하루가 몽롱했었다. 어느날 밤인가, 옆방사는 선배가 테이프하나를 들려주었다. 한밤중의 시골에서 “황병기의 미궁”을 처음듣고 소름돋던 기억은 십년이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홍신자의 기괴한 소리와, 가야금을 긁는 소리는, 내 오른쪽 두개골의 어딘가에 있는 깊은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오늘은 밤샘을 하는 바람에 열한시쯤에 꿈을 꾸었다. 기록할만한 스토리나 느낌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기록할 꺼리는 있는데…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은 내 꿈의 커다란 주제. 아마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알수 없다. 아무튼, 항상 쫓기고, 쫓기다가, (받침이 치읓이네.. 이런건 자꾸 쓰면 어색해진다..) 엄청 긴장한 상태에서 꿈에서 깨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쫓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무죄를 입증할만한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해가 없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분명, 나를 쫓는 자는 “형사” 라던가 하는 종류의 인간인 관계로 나로써는 그에게 잡히면 “죄가 있든 없든”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분명했지만, 어쩐일인지, 어떤일이 있어도 “나는 괜찮아” 라는 근거를 찾기 힘든 자신감을 느꼈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 한줄기가 붉은 돼지에서처럼 뻗어있었다. 홍익어린이집의 간판을 지나쳐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골목길을 세시간이나 헤메었다.
‘아, 골목길을 세시간이나 헤메었구나’ 라고 생각할 때에 다시 하늘을 보았다. 눈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있었다.
저게 바로 이그드라실(Yggdrasil)이겠구나, 그럼 지혜의 샘물이 여기어디 있겠네.
그러나, 샘은 없고, 모모한 여인이 풀위에 누워있었다. 나는 이것이 여인을 샘물에 비유하는 빨간책 특유의 기법이구나, 하였다. 그래서, 그 여인은 지혜의 샘이 아니구나, 그래도 여기어디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 샘을 찾는 나 자신이 바로 그 샘이라는 선불교식의 깨달음을 얻었다.
파병을 반대한다는 이등병의 편지 - mbc 희노애락 - 를 보고서 imbc에 들어갔더랬습니다.
“이런 선택을 해서 어려워지는 것보다, 이렇게 하지않고서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던 것 같아서, 혹 정확한 발언을 찾을 수 있을까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그곳 게시판에서는
요즘짬밥이 잘나온다더니,,,,, 그거쳐먹고 헛지랄하는거다
라고 써있었습니다. 그게 그 글이 하나면 모르겠는데, 아예 “강이병을 이라크로 보내라” 는 글들로 도배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강이병의 용기가 부러워서, 아.. 블로그에 올려야지, 라고 생각했더랬는데, 혹.
존대말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한달이 넘어갑니다. 블로깅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합니다. 존대말블로그 시작한 지가 일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주의깊게 하고, 단어를 잘 선택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웃음이 즐거움을 유발한다” 의 연장으로의 “존대말 블로그”는 억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적절하게, (당시에 코멘트를 남겨주셨던 김도연님이나, 석환님은 이미 하고 계셨던 그 방식으로) 섞어서 쓰기로 했습니다.
블로그, 이것저것 생각할 꺼리를 많이 줍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 “아 무슨 얘기를 올릴까…” 라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집에까지 왔습니다.
여섯개의 시선 꼭 보아야 할 한국 영화입니다. 방금 녹색극장에서 보고 왔습니다. 어제 2580에서 - 내 친구 재완이를 닮은 - 여균동감독이 뭐라뭐라 떠드는 장면을 보았었습니다. 괜찮겠군..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슬픈 이야기들이고, 대개는 눈물을 질질짜는 장면들 넣어서 마음을 아프게 하곤 했는데, “6개의 시선”은 참 담백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 기억나는 장면들입니다.
1. 그녀의 무게
마지막 장면의 단란주점 씬에서, 남자들은 낮의 사무실에서 만나는 여자들과 밤에 술집에서 만나는 여자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 돈벌기의 쉬움
돈벌기가 쉽다고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제 생각에 돈벌기는 쉽습니다. 과정은 힘들 수 도 있지만, 핵심은 “집착” 이기 때문입니다.
한다리건너 아는 분은 코딩그만두고 부동산을 시작했답니다. “투기”였는지 “투자”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분, 몇억은 버셨더군요.
집착하면 됩니다. 저도 약간은 성공의 향기를 느끼던 때가 있었구요. 지금은 물러나있지만, 언제라도, 몸바쳐 집착하면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음을 알고있습니다.
그럴싸한 말로하면 “열망” 이 되겠고. 겅호니 머니.. 좋은 말로 열심히 포장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집착”이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