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일하던 회사

전에 일하던 회사 사장님께서, (나의 사장님이 되시기 전인 지난세기에) 조선일보에 기사가 났었다. 혹시 그 URL이 퍼머넌트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아래쪽에 글을 옮겨놨다.

갑자기 그때 그 기사를 올리는 이유는? 와리.. (친구이면서 후배인 와리)가 1999년 5월 24일에 나에게 기사를 보내주면서, 축하메일이라도 보내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메일을 (당연히) 아웃룩 메일박스에 넣어놓았고, 지금도, PST 파일로 해서 잘 가지고 있다.

PST 파일은 계속 커지면서 새 컴퓨터를 살때마다, 가장 중요한 데이터로 소중하게 다뤄왔다. 하지만, 그안에 들어있는 데이터는 그냥 디스크를 차지하는 바이트 수로만 존재할 뿐, 일년에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오늘, 메일박스안에 있는 1998년 부터의 메일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참, 이런 것이 있군. 하면서 올린다.

“97년 가을 미국 소프트웨어산업은 호황을 누리는데 왜 우리나라는 부진한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제품 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실리콘밸리를 둘러보고 돌아와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IMF를 맞았습니다.”.

순조롭던 일정은 뒤엉키기 시작했다. 3억원을 내놓기로 했던 투자가는 “좀더 생각해 보자”더니 연락을 끊었다. 함께 창업하기로 했던 6명 가운데 5명은 “가족의 생계가 더 급하다”며 직장에 남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는 남은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딱 6개월만 버텨보다가 그래도 안되면 그만두기로’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중3때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야 했다.

학교에서 숙식을 제공해주는 구미공고 전자과를 졸업하고 대학은 포 기했다.

지 사장은 “도와줄 일가친척도, 내세울 학벌도 없었지만 줄곧 컴퓨터 분야에서만 일해 오면서 나름대로 실력에 대한 자심감이 있었기 때 문에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총 직원 6명인 이 회사의 매출액은 아직 미미하다. 98년 2월 정통부 로부터 우수신기술업체로 지정 받아 지원 받은 8000여만원의 자금으로 연구개발을 계속해 왔다. 국내업체들과 시스템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 어 지난 5월에는 싱가포르의 모든 학생이 사용할 PDA에 들어가는 필기 인식시스템을 공급키로 계약을 맺어 기대수입액이 수백억원대에 이르지만, 대외적으로 ‘예상매출액’을 공개한 적이 없다.

“예상매출액이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보다 더 값진 우리 회사의 가치는 세계시장을 목표로 겨냥한 우리의 꿈과, 이 목표를 뒷받 침해줄 기술력, 무엇보다 해보겠다는 젊은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석종훈기자 : alameda@chosun.com)


댓글

hochan : 한 가지 재밌는 건, 이 기사를 쓴 석종훈 기자가 지금 Daum 미디어의 본부장으로 간 사람이라는 것이군요. (2003-08-12 17:09:20)

  > 돌핀호텔 : 글쿤요, 역시 이 바닥, 참 좁네요.. (2003-08-12 17:37:42)

구녕이 : 몸조심! 말조심 해야겠네요. 제권님 또는 hochan님이나 돌핀호텔님이 제 상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우스게 소리입니다. (^^)v (2003-08-12 17:58:08)

NewChz : 기사를 읽고 난 후… 왜 슬퍼질까여??? ㅜ.ㅜ (2003-08-13 04:51:26)

  > 돌핀호텔 : 구녕이님, 히… 그럼 재미있겠네요.. 혹, 구녕이님 블로그에 제 욕이 올라올지도.. ^^ NewChz님, 뭔가 이해가 될 듯도… (2003-08-13 09:5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