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왓의 정문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뒤편으로 “앙코르 까페”란 곳이 있다. 음식도 깔끔하고, 11시까지인가 조식 메뉴가 있었다. 싸다. 그곳에 있던 고양이다.
시간이 남는 것 같아서, 앙코르왓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사방에 이런 아가씨들이 새겨져있다. “데바다”라고 했다.
여기는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곳. 실제로 도서관이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쉬기에 정말 좋은 장소였다. 현지인들도 여기저기 누워서 자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뜨거운 곳을 거닐다가, 가끔씩 쉬기위해서 그 먼 흙길을 달려왔다.
이번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다. 역시 사원의 중심에는 부처님이 있었다.
다음날 투어의 시작은 빡세이 참끄룽. 이름도 이상하지.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루니가 쓴 책에는 뭐라고 되어있긴 한데, 기억나진 않는다.
“빡세이참끄룽”이라는 사원이다.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스타마트에서 샌드위치인지 햄 버거인지를 사서 이곳 오래된 폐허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빡세이 참끄룽에서 아침을 먹는다. 정말 공기가 맑았어.
앙코르 톰
앙코르 톰 남문.
이렇게만 보면 뭔가 섹슈얼한 느낌의 조각들이지만, 사실을 우유의 바다를 젖는 중이라고 했다.
앙코르 톰에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생활상이 새겨져있다고 했다. 그중에는 애기를 낳는 산모도 있다고 해서 한참을 찾았다.
저녁다섯시에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3일짜리 표를 사면 그날 저녁부터 쓸 수 있다고 했다. 해서, 저녁때 앙코르왓에 가보았다.
여기가 바로 앙코르왓이란다.
저 손가락 같은 것은 “나가”다. 나가.
나가는 뱀이다. 부처님이 수행하실 때에 자기 몸으로 감싸서 보호해드렸다던가하는 뱀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눈으로 마주대하고 나면, 도저히 올라갈 마 음이 생기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굉장히 많이 가는 곳이고, 왠만해서는 사고가 나지않는다 고 믿고싶겠지만, 사고가 난다. 발목을 크게 다친 사람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올라가고 나면, 일종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방콕은 태국의 수도. 전승기념탑인지 민주기념탑인지 근처에 있는 섹소폰이라는 라이브 까 페에 갔었다. 이 친구, 후까시가 굉장하지 않은가?
이날 태국의 국왕께서는 70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나는 업소에서 일하면 귀에 안좋다더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 덕분에 짭새들이 잘나가는 업소만 골라서 단속을 하러 나왔었다. 연주 자들은 약간 짜증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단속이 끝나고 난 후에는 더 큰소리로 연주를 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태국은 이 동네에서는 제일 잘나가는 나라다. 미얀마라던가, 라오스 라던가, 캄보디아라던가. 그런 곳에 가보면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앙코르왓에 갔었다.
다들 여기서 찍는다는 포인트를 찾아갔다. 왼편 호수의 끄트머리.
나도 찍었다.
신혼부부도 옆에서 찍고 있었다.
여행기, 라기보다는 그냥 사진첩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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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앤 : 늦게 올리네..하긴 난 올리지도 않았당..쩝 (2005-01-13 05:19:47)
새벽에 한번 깨어나서 꿈인지 생신지 모를 격렬한 경험을 하고서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는 열두 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눈을 떴다. 하루키식으로 꼼꼼하게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온몸을 씻었다. 식당에서 대강 밥을 먹고는 집을 나섰다. ‘오이’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썽태우 터미널이 있는 딸랏쏫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썽태우를 타고서 카론 비치에 갔다. 방을 나서기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챙겼었다. MD는 깜빡했고, 카메라는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
멀리 있는 이들은 이곳의 인간들이 계속해서 슬픔에 젖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정홍보처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라 함은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신이 피곤해지는 종류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젠가 그젠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도착했다. 헌데, 날아오기 전에 복장통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덕분에 “알록달록 봉사단”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이쪽에서 얼핏본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를 보고서 저거다, 저거로 통일하자, 라고 결심했나보다. 이런 때 입기에는 기막히게 딱 맞는 옷일 것 같긴 하다.
좋아. 입을 수 있게 해주자. 서울에 국정홍보처 모 과장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안받는다. 전화를 안받길래, 동절기?
어제 사진을 받아서 프린트했던 실종자 한분이 다행히도 다른 쪽으로 여행루트를 바꾸고, 살아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방에 소식을 알렸다. 이미지를 바꾸고, 편집하고 프린트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살아있다니 많이 기뻤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저 방콕에서 항공권을 구하고 있는 줄로만 아신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함에도, 크게 걱정하고 계실까봐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방금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나간 것 같다. 사정을 설명했으니 알아서 처리해주겠지만 그래도, 잘 믿음이 안간다.
푸켓은 고급휴양지, 하루에 160만원이나 하는 숙소도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개발되어왔고,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기반시설이 꽤나 잘되어있는 편이다. 병원도 외국인들만이 드나드는 꽤 비싼 병원도 있다. 전에 발목에 종기가 났을 때, 나도 이용한 적이 있는 “방콕-푸켓 병원”이 외국인들을 위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들 모두 영어를 굉장히 알아듣기 쉽게 발음해서 기분좋았던 그 병원. 내 발목의 종기를 수술했던 응급실에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응급실은, 난, 다시는 가고싶지 않아졌다.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하루를 지내고나니, 왜 의사들이 수술중에 농담따먹기를 하고,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지 알게되었다.
원래는 오늘부터 항공권을 구해서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랬습니다. 헌데, 며칠만 더 있어야 할 듯 합니다.
걱정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오늘에야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 코창에서 나와서 방콕에 도착했더랬습니다. 저와 동생이 머물던 코창은 태국 동쪽 해안이라서 해일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어찌 어찌 전해듣긴 했었는데, 방콕나오면서 신문이랑 방송을 보니까, 너무 피해가 심하더군요.
별일이 없는가 하고, 푸켓쪽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과 선라이즈에 전화해보니, 한국인 여행자들의 소식을 확인하고, 병원이랑 시청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이미, 한국으로 들어간 상태라면 모를까, 아직 방콕에 있는 상태면서 모른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는 씨엠립.
캄보디아에 왔다. 한번은 봐야한다는 생각때문에 이번에 질러봤다. 앙코르왓. 좋다. 한번은 봐야 할 곳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온 것이 다행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은데, 꽤 힘들어하실 것 같다.
내일까지 있다가, 다시 방콕으로 나가서 아란-뜨랏-코창으로 가려고 한다. 동생이 한번은 바다를 찍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관계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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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ry : 뉴스보고 깜짝 놀랐어요. 해일로 인해 별일 없으신지.. (2004-12-26 12:25:01)
hanti : 저도 지진+해일 소식 때문에 걱정되어 왔는데… (아직도 태국에 계신가 착각) 캄보디아에 계시니 안심입니다.
I’m in Donmooang airport, waiting my sister. I’m staying at Sam’s Lodge in sukumvit soi 19. FY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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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cet : Don’t you come to NANA Plaza in BKK? I bet you’d like that place with pleasure. Good luck. (2004-12-19 22:59:59)
자, 이제 방콕으로 갑니다. 식객생활을 받아주신 푸켓썬라이즈 큰조이님이랑 둘째조이님, 그리고 카놈찐님께 많이 많이 감사드립니다. 그저 워드파일을 조금 작성해드리고, 홈페이지에 글몇개 올리고, HTML 태그좀 봐드리는 정도.. 그 정도 일을 해드리는 거로, 임시직원 비슷하게 대우해주셨습니다. 해변에 나갈 때도 데리고 나가시고…
여행사 일이 어떤 일인지 대강은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정말 힘든 일이더군요.
이제 방콕으로 가서 동생과 소녀님을 만나고, 삼일동안 럭셔리한 방콕투어를 진행합니다. 저는 방콕은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이겠지요.
그제는 극장에서 “The Incredibles”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80밧). 꽤 볼만했습니다. 어제는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하고 디북이란 레스토랑에서 훈제연어를 먹었습니다. (스케일링 + 폴리싱 = 600밧)
오늘은 25밧짜리 버스를 타고 카론 비치에 가서 눕는 의자를 빌렸습니다. (100밧) 그리고.. 코코넛을 먹었습니다(30밧).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속을 긁어먹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만 놀고 있으면, 바보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기는 디북이라는 레스토랑입니다. 프랑스음식과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두가지 종류 모두 꽤 잘한다는 소문이 있는 집입니다.
이제는 태국말이 조금씩 들린다. 정확하게 들리는 단어도 아주 조금은 있고, 심지어 문맥과 느낌만으로 대강 무슨말인지 알아듣는다. 하지만, 가지고 온 태국어교본은 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석달이상 머물면서 왜 태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나에겐 지금 아는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은 배우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할 때는 우리말로 이야기하다가 바로 옆의 태국사람들과는 태국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느껴지는 어색함,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다는 느낌.
가끔 이분 사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그래, 참 잘 사시는구나 싶다. - 그러니까 당신들도 이렇게 살아.
하도 네팔과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두군데는 꼭 가봐야만 할 것 같다. 네팔. - 고통스런 산행에서 생동감 느껴
절과 스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자네 서러운가
지식노동자는 40대에 이르면 탈진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자체는 좋아하고, 회사에서도 필요한 작업이고, 사람이다. 하지만, 더이상 이 일이 나에게 도전의식을 주지는 못한다. 글에서 주어진 해답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문제 자체는 마음에 든다.
오늘 이 동네에서 망사업을 하고 있는 KTI의 모과장님을 만났다. 이미 기계도입이나, 기술이전은 끝났지만, 밍기적대면서 완료 사인을 안해주고 있는 태국의 전신전화국을 씹다가, 한국도 똑같다면서 약간 욕해주었다.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한국이나, 태국이나, 갑은 모두 비슷하다. 당연하다. 갑이란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누리려는 사람이다.
미래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다. 나 또한 그리 생각했다. 컴포넌트들이 잔뜩 등장할 것이고, 이것들을 대강 조합만 하면 될꺼라는 둥. 그런 말을 많이 들었었다. 정말 그럴까?
비자런을 하러, 라농으로 갔다가 카오속에 들렀다, 왔습니다. 3일 걸렸습니다. 라농의 미얀마 이민국이 미얀마의 “해피버쓰데이” 로 인하야 단축업무를 한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라농에서 하루 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쪽은 SUTA게스트하우스가 깔끔하고 이뻤습니다만, 거기 사진은 없습니다.
푸켓에서 태국 본토로 나가는 다리입니다. 사라신 다리. 짧은 다립니다. 저 다리를 건너서, 여섯시간정도를 달려 라농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나랍니다. 버스.. 버스.. 버스..
라농에서 하루자고, 태국이민국에 들렀습니다. 관공서는 다 똑같습니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뭔가를 끄적거렸습니다. 하기전엔 떨리지만, 하고나면 하나도 안무서운 것이 공문작성과 국가고시죠.
아침에 눈을 뜨면서 ‘아, 또 지구최후의 날이었던가’ 라고 생각했다. 내 생전에 오긴 올건가, 그날이. 어쨌든, 최후의 날을 맞아 지구의 표면 일부를 떼어낸 후 이를 우주로 들어올렸다. 그런 힘겹고 상상 안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타운이 꿈의 배경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니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공기가 희박할 것 같아. 그걸 느끼는 순간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도대체 나와 함께 있던 그 인간들은 누구를 상징하고, 삭막한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을같던 그 동네는 어디를 상징하는가. 태국의 일반적인 인간들이 살아가는 판자집을 상징하는 것도 같지만, 잘 모르겠다.
나오키 상의 이야기는 전처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음모론을 닮아서 링크걸어둔다.
지나간 기회…다.
초콜렛아가씨와의 이별 몽환적이다…
재미있는 물품들 - 역시 이진법시계가 제일 탐난다.
앗, 로봇찌빠다.
구글의 비둘기
키스
빠이에서 자유롭던 엘리다스 아저씨는 먼나라로 떠나신다. 엘리다스님은 미스코리아 뺨치는 여인의 인도여행 길잡이였다. 땅은 넓고 동네는 작다. 모두가 서로을 알고있다.
엘리님, 블로그에서 하나, 둘,셋, 넷
경제학은 언제나 우리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난해함을 잃지 않는다. 언제나.
이정우님의 아트인 컬쳐 처음1,처음2,두번째 하나, 둘, 셋, 그리고, 헨리다거라는 사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