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그동안 아무일도 아닌데 분노가 치밀어 오르던 것도 이 녀석 때문이란다. 치료를 받기로 했다. 더이상 혼자서 명상과 호흡으로 가라앉히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공황장애는, 요즘엔 TV에도 몇번나오고 해서 꽤 유명한 병이지만, 어쨌든 당해보지 않은 인간에게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간단하게는 “감각을 받아들이는 뇌의 하부가 쓸데없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병이다.
손발이 저렸던 것이나, 숨이 막힐것 같다던가, 비행기안에서 괴로왔다던가, 따위따위, 그리고, 수시로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까지도…. 역시 범인은 이 방안에 있었다.
그래서…
삼년전 프로젝트에서 만났던 ETRI 다니는 분을 이번 프로젝트에서 또 만났다고 쓴 적이있다. 알고보니 지금 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에 삼성쪽 책임자는 역시 그 삼년전 프로젝트에서 삼성측 파트너였다.
좁다.
다급한 나머지 끌어들여 보려했던 기술자 한사람은 역시 자주 만나는 회사에 입사했고, 핸드폰 디자인한다고 해서 자주 만나는 회사는 aqua에서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고, 선배랑 알바삼아 만들어 보려는 사이트에는 이책에 사진찍은 분이 참여한다고 했다.
좁다.
동생이 “빠이가 궁금해서 서핑하다가 임모양 사이트를 발견하고는 이 사람 알아? 했다.
일단,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일주일전부터 다시 손발저림이 시작되려고 했다. 어떻게 고친 병인데, 이 녀석에게 다시 걸려들 수는 없다.
“즐겁고 보람있게 일한다”, 라는 마음을 놓치기 싫었다. 하기 싫은 일을 (혹은 할줄 모르는 일을) 어쩔 수 없이 떠맡으면, 얼마후에 몸이 말했다. 그만하라고.
어느날, “싫다, 싫다. 이렇게 사는 건 싫었는데” 따위의 푸념을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놀랬다. 방향을 명확하게 그려놓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상한 곳으로 빠져들고 마는거야.
이제는 그 할줄모르는 일에서 조금 멀어졌다. 가능하다.
집사람이 어제 조규찬 콘서트를 예매해주어, 후배와 함께 3인이 콘서트를 보았다. 오랜만에 문화활동이라 기뻤다. 조규찬은 조금 졸렸지만, 열심히 노래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심각하게 데이터 싱크 알고리즘을 고민했을 정도로 지루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문화 생활이란 점이 기뻤다.
다른 팀에 빌려주었던 팀원이 중국에서 돌아왔다. 앞으로 삼성이 하는 프로젝트에는 다시는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근태를 엉망으로 하고 돌아왔다. 축하해줄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귀국 기념으로 팀원들과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워주었다.
춥다.
집사람도 추워하고, 나도 추워한다. 두사람 다 추워한다. 핑계만 있으면 추위를 피해 멀리 떠나고 싶다. 두사람 다 감기에 걸려서 머릿속이 딩딩거린다.
그건 그렇고, 위피사업을 할 때, 우리팀은 경쟁에서 탈락했었다. 아쉽고, 아쉬운 사업이었는데, 그때 사업 심사를 했던 연구원 단장님을 어제 다시 뵈었다. 삼년만인가. 아마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 했다.
내 얼굴, 쉽게 잊혀지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삼년이면 긴 시간인가.
이번에는 내쪽에서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서 만나 뵈었다. 그래봤자. “갑”이라고 떵떵거린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꿈에, 재완, 사장님과 함께 앙코르왓에 갔다. 재완은 여전히 더위에 허덕이며 어쩔줄 몰라했다. 들어가는 입구쯤의 허름한 가게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니 어느새 내가 올라가던 언덕은 회사로 올라가는 언덕으로 변해있었다.
회사 건물 너머로 아이파크가 보였다. 젠장. 회사로 기어기어 올라가다가, 깨어버렸다. 뭔꿈이 이렇단 말인가.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져서 계속 잠을 청했더니, 이번에는 대통령과 강아지 한마리가 등장했다. 강아지라. 뭔꿈이 이렇단 말인가.
요즈음 출퇴근길에서 “음양사 별전” 을 보고 있다. 헤이안시대가 훨씬 살기 좋았겠다. 도술도 일상적이고.
몸이 않좋아서 뭔가를 피하는 일은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등뒤쪽에 숨어있던 지방종께서 사라지신 것이 (확실치는 않지만) 큰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다니던 한의원에서 침맞고 약먹었기 때문일 수 도 있고(이제는 안간다)
지금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기기간 통신이 안정되었기 때문일 수 도 있고,
어쩌면 결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건강이 않좋아서 뭘 못하겠어요. 라는 말보다는, 지난 주 보다는 더 좋아진 것 같다는 말이 더 많이 나온다.
집사람은 자기암시에 관한 책들과 처세술 책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서 놀래곤 한다.
이것마저 다 나오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아시모프의 로봇3부작 정도가 아닐까?
“이렇게 은하계 전체에 인간이라는 동일 종족이 퍼져 살게된 것은 사실은 아주 오랜 옛날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행성은 작은 위성하나를 가지고 있다” 라는 전설이 남아있는 은하 제국. 파운데이션.
우짜둥둥,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를 코엑스에서 보았다. 볼만했다. 호주의 울룰루는 사실 “프랭크” 라는 사람이 빨간색으로 칠해놓은 것이라던가, 해수를 채워넣는 장면같은 것 재미있네.
그건 그렇고, 저 우울증걸린 로봇(마빈) 목소리가 그이였다니.
오늘은 토요일. 프로젝트 막바지인 저쪽팀은 모두모두 공장으로 출장중이다. 회사는 썰렁.
요즘의 생활은 너무 일정하다.
11시 출근 - 11시 퇴근 : 12시간 동안 버그를 15개정도 잡는다.
다섯개정도 잡고 담배를 피우고, 또 다시 버그를 잡으러 자리로 오고.
MFC 나 QT 나 모두모두 좋은 툴이긴 한데, 잘 모르는 인간에게 쥐어주면 망치로 톱질을 해놓기도 한다. 어쨌든,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이다. 게다가 신혼여행사진들을 주욱 올려놓고 나니 더욱 더운 나라가 그리워진다.
자, 오늘은 밤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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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술을 했다.
어깨의 날개죽지 바로 아래에 자그마한 혹이 나 있었다. 일년은 된 것 같은데 별로 아프지도 않고 해서 그냥 두었다가, 자꾸만 자라길래 결혼전에 병원에 갔었다. 병명은 “지방종”. 지식인에서 알게된 정보가 정확했다. 지식인으로 얻은 다른 정보들은
아주 쉬운 수술에 속한다. 20분정도면 충분. 째면 저절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주사약으로 없애주기도 한다.
회사 근처에 있는 광혜병원을 찾았다. 주변인들의 조언에 따르면 광혜병원이 꽤 잘한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결과 조성민이 수술하기도 했던 병원이었다.
인연에 대해 포스팅을 하다가 그만둬버렸다. 3개국을 아우르는 인연이라 그럴싸할 듯했지만, 글빨이 오르질 않는다. 뭐, 내 글빨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암튼.
윤석철교수님이 새책을 내셨다. 알고보니 매니아들이 꽤있다. 명쾌했던 “경영학의 진리체계”만큼이나 좋은 책일 것이다.
강금실전장관이 요즈음 “전생관련 다큐멘타리”를 즐겨본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주제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는 만나는가. 천리안이 열리면 삼생이 보인다던데, 내가 만난 인연들이 과거에는 어떠한 인연이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인연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면 “스트로볼로스의 마법사” 같은 책이 좋다. 천년전부터 도반으로 전생을 거듭하는 인연이 소개되어있었다.
어릴 때 부터 비과학적인 (아직 과학자들이 검증하지 못한) 영역에 언제나 관심이 있었다. 마음으로 움직이는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나는 (지금은 쓰지않는)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시절에 몇번이나, 데이터에러가 나는 디스크를 넣고서는 명상에 잠긴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읽혀져라, 읽혀져라, 읽혀져라”
이렇게 내가 실시했던 간이 실험들에 따르면, 데이터 읽기의 성공과 실패에는 마음의 안정한 정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마음의 안정도’라는 것이 측정하기 힘든 변수인지라. 논문을 쓰기에는 부적합했다.
믿기지 않는다면, 망가진 휴대폰, 에러가 나는 CD 따위를 들고서 당신도 해보기 바란다.
지난주에 24시간 연속코딩과 30시간 연속코딩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해보니, 그런대로 할만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그 결과가 나타났다.
출장 지시를 받는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오늘 짐을 꾸리는데, 손톱이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을 발견했다. 약간 저리면서 손가락에 피가 안통하는 것이 색상으로 드러나고, 이제 좀 있으면 자다가 감각이 없어서 깨나는 증상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쉬는 것. 별수없이 주말까지 푹 쉬기로 했다. 다들 죽기직전의 스트레스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일요일부터 담배를 안피우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번 일주일 동안은 뭘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2년 동안이나 끊었던 담밴데 다시 끊는게 뭐 힘들겠나. 하지만, 일곱번정도 끊고 나서야 일주일금연에 성공했다. 정말로 끊고싶다면, 한두번 시도하고 실망하지 말자.
금연의 효용은,
머리가 항상 띵하다는 점 - 맑은 건지 흐린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 항상 맑은 듯하다.
저녁이 되면 정상적으로 졸립다는 것 - 점심에도 가끔 졸립다.
뭘 먹어도 맛있다는 점. 아침이면 건강이 느껴진다는 점.
출장이라니. 미국도, 호주도, 중국도 아닌, “구미” 출장.
경상도에 있는 “구미” 다.
노트북같은 걸 들고 사업장에 들어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서 아예 아무것도 안들고 갔다. 따라서 사업장에서는 일하지 않았다. 대신 밤에 여관방에서 새벽 다섯시까지 디버깅을 했다. 회사 컴퓨터에 원격접속해서.
서울 사무실에서는 떠오르지 않던 기발한 테크닉이 지방 여관방의 새벽 다섯시에는 떠올랐다. 30초 걸리던 것을 2초로 줄이기 성공. 기뻤다. 하지만, 그래도, 구미라니.
지방 출장은 참으로 짜증났지만 단 한가지. “공기”는 여기보다 맑았다.
회사에서는 다음주부터 7월말까지 구미에서 작업해주길 바라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시작은 좋은 것 같다.
내 이름(朴濟權)은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지 않았다면, “삐여 치 쿠언~” 으로 읽어야 했다.
수강생들은, 서울이 베이징보다 공기가 맑다고 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베이징은 여기보다 훨씬 공해가 심한가봐.
인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적고, 다들 지하철이나 자가용을 타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특정지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그 동네를 걸어다닌다고 했다. 홍대나 명동에 데리고 나가볼까.
차들 대부분이 한국제네, 라고 했다. 우리에게 외제차라는 것은 아주 비싼차를 의미한다.
회사에서 파는 SDK 강의문서를 내부소스 봐가면서 작성하고, 다들 계륵으로 여기는 PIMS 하나를 수선하고 있다. 코딩이란건 하기 전에는 하기 싫다가도, 소스를 보게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게 만드는 묘한 녀석이다. 덕분에 첫달 네번 밤샘을 하고 토,일요일에도 몇번인가 출근해버렸다. 이렇게 일하지 않기로 결심 같은 걸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일단 사무실에 등장을 했으면, 저 인간이 일 좀 하는 것 같다. 라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과도한 눈치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한달동안 잘 달린 끝에 연구소장과 사장님이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느낌이다.
구직 작전이 완료되었다.
대림역에서 갈아타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곳, 연봉은 많이, 간부는 아니고,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거나, 혹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 그리고, 주식을 준다거나 하는 말 대신 현금보유액이 확실한 곳. 그런 기준이었다.
이제는 가능성으로 치장한 곳에서 미래를 보고 일하는 것은 불가. 가능성도 있고, 돈도 있어야 다달이 월급이 나올 테니까.
어쨌든, 이번에도 아는 사람 하나밖에 없는 회사에 들어갈 뻔하다가, 결국 아는 사람들로 꽉 찬 회사에 들어왔다. 나는 모험심이 부족한 인간인 것 같다.
방콕에서 가장 걷기 힘든 곳은 스쿰빗이었다. 씨얌쪽이 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스쿰빗은 인도가 좁아서 걷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어디를 걸어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내 어깨를 치거나, 큰소리를 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한번은 카오산의 노점에서 죽을 먹는데, 바로 옆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었다. 우리는 꽤 안전하다는 느낌으로 계속 죽을 먹어대기만 했었다.
오늘 몇번인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짝을 쳐다보았다. 전처럼 화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쁜가보네.. 하고 한참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고.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로 일주일넘게 주변사물들이 모두 모두 환상으로만 보였었다. 태국여행의 마지막에 푸켓에서 들은 생존 경험담들 때문이었을까. 귀국 비행기를 타기전에 가끔씩 한밤중에 깨어나곤 했었다. 어린애들이 처음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때에 겪게 되는 혼란과 깊은 고독 같은 것을 끄라비의 호텔에서 한밤중에 느끼곤 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의 다섯시간은 너무 답답해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비행기를 못타겠구나, 싶었다. 그게 폐쇄공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구로동의 내 집에 돌아와서 다섯달만에 내 방에 들어섰을 때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에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환상일 뿐이고, 내 등뒤에는 까만 암흑만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