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일본식 주택의 2층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전형적인 일본식 창문을 통해서 1층의 모닥불을 지켜보고 있었다.
메텔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뒤에서 다가왔다. 우리를 밀치며 창밖을 구경하려 하였다. 아무런 사과나 미안한 표정이 없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 순간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남자친구를 한번 쓰윽 쳐다보고는 그녀를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의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내방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깨닫고 난 후에도, 내 어깨가 상상속의 그녀를 향해서 내질러 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시립미술관에서 한중일초상화전 관람.
윤두서의 초상화를 실물로 보았다. 우리나라 할아버지들은 대개 고집이 있어보였다.
옛날 높은 사람들은 손톱을 길게 길렀다. 아마도 긴손톱을 가져도 불편하지 않다는 상징성 때문인 듯.
대개의 초상화는 사실적이다.
청대 의자에 조각은 이뻤다
전족.. 정말 작다. 가장 작은 발은 금련이라고 불렸다. 연꽃을 닮는다나.. 그다음이 은련, 동련이다.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볼만했다.
전시실 옆에는 “천경자 전시실”이 있었다. 초상화전 쪽도 좋았지만, 사실 이쪽이 더 좋았다.
Ubiquitous, 그러니까 아무곳에나 다 계신다는 컴퓨터에 대한, SK 텔레콤 자회사의 이사가 진행하는 다큐를 보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워서 천정에 달린 스크린으로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대목에서 박장대소.
또, 레스토랑에 갔으면, 편하게 밥을 먹을 일이지, 거기까지 팩스가 날아오게 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건가. 그런 세상이 되면, 정말 편리하겠다는 말은 웃으라고 한말 같았다.
한편으론 그들 연구자들이 첨단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부러움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건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벅스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다가, 벅스플레이어에 떠있는 광고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iPod를 쳐다봤다.
(IMG 링크 사라졌네요. 암튼.)
똑같이 mp3 가지고 사업하는데, 누구는 저렇게 멋진 걸 만들어내고, 누구는 사이트를 광고로 도배한다. 광고가 멋있기라도 하면 그나마 민망하지는 않지. “카드대출 전문기업” 이라니…
우리가 가진 창의력은 여기까진가. 이제는 이런 식으로는 안되는데. 헐리우드는 못따라가더라도, 주선생님 정도는 보고 배워야할텐데..
댓글
link : 천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티브 잡스나 주성치같은 천재가 우리나라에는 없잖아요. (2004-02-10 01:43:47)
방금 추천한 책에서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나서 한마디.
여름이면, 내가 살던 곳의 골목길에는 “평상”이란 것이 펼쳐지곤 했다. 동네 아저씨들이 바둑을 두기도 하고,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또, 우리또래의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에는 골목골목으로 드나드는 자동차 때문에 그런 약간의 공동체적 분위기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난 골목길을 걸으면서 뒤에서 비쳐지는 헤드라이트에 미리부터 길옆으로 비켜줄 때마다 .. 이게 사람살라고 만들어놓은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도 언젠가는 차를 사겠지.
집은 보수적인 것이라, “온돌”이 정착하는데에 거의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 라는 책은 그런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주로 한옥을 이야기하지만, 집의 구조에 집착해서 일일이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현재의 가옥 구조에서 TV를 향해 쇼파를 놓아둔 거실구조가 장식장의 높이를 30센치 내외가 되게끔 만들었다.
라던가,
70년대에는 30평형 아파트에도 식모방이라고 해서, 부엌의 바로 옆에 따로 방이 있었다.
라는 식으로 현재와 연결지어주는 부분이 많아서 읽기 좋았다.
바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만화에서 였다. 심해에 잠수정이 내려갔는데, 이상한 사람이 잠수복도 입지 않고서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바알시이파” 라고.
하지만, 그 이름을 들은 허접 캐릭터들은 “뭐? 발시려 아파?” 라고 웃긴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바알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다. 바알은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신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신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히브리성경에는 한참동안이나 “바알”을 공격하는 말들이 나온다. 그것은 왕이 바뀌고 시대가 흘러가도, 이미 너무 넓게 퍼져있던 기존 종교를 없애버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리퍼러를 보고 있었다. 가끔 흔적이 남아있지만 누군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않는 분이있다. 그분은 웹페이지에 북마크를 적어놓으시고는 가끔 들어오신다.
거기서 발견한 “곰 아줌마 이야기” 일단 위시리스트에 적어둔다. 적다보니, 전에 적어둔 “다이아몬드 에이지”가 보인다. 책사는 것도 과소비야..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분이 지난주에 과소비한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동지를 발견(?). 과소비 내용중에 “‘책벌레’는 사람들이 재미없다길래 주문.” 이라는 대목에서 존경심을 느낀다.
“곰 아줌마..“에서 인용해놓으신 구절이 “박민규”의 것이라 나도 재인용해본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세상을 띄엄띄엄 알고자 하는 이 나쁜 습관을 고쳐나가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종족이 있게마련, 요즘은 손놓은지 꽤 되었지만, 워크래프트스타를 할때는 항상 오크족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앵글로색슨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기사가 화제가 되고있다. 김도연님 블로그에도..
사방에서 코멘트들이 붙더니, 스노비즘이란 단어도 나오고, 시네큐브가 적자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나온다. 시네큐브.. 적잔가? 시네큐브처럼 자그마하고, 시시때때로 “그녀에게” 따위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인데.. “반지의 제왕”처럼 알려진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극장에서 그럴싸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걸 스노비즘 이라고 부르는군.
기분좋은 제안이지요? 노동윤리라던가, 각종이즘따위는 잊어버리고, 저처럼 딱 일년만 한심하게, 놀아보세요. 저요.. 이제 4월까지만 놀면, 딱 일년입니다.
짧으면 석달, 길면 삼년.. 놀겠습니다. 라고 사방에 선전을 해대고서 놀기시작했더랬습니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건 아니었고.. 오직 믿는 것은 실업급여 뿐!
얼마전에 모 정당 후보의 사무실에 잠시 적을 두고 있는 백수선배를 만났더랬습니다. 아직 운동기간이 아니라서, 개인 사무실에서 홈페이지만 관리해주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선배도 십년넘는 벤처기업 이사다니기에 지쳐 작년부터 쉬는 중이라던데. 선배의 말씀.
“직장생활로 40 이 되기전에 한번쯤은 크게 변할 일이 생기나봐.
리눅스를 쓸 일이 있을 땐 항상 레드햇이었다. 이번에는 FreeBSD를 써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혹시나 필요한 어플리케이션들이 포팅되어있지 않았다던가하는 귀찮은 사건이 발생할까봐 리눅스에 머물기로 했다.
Bugzilla같은 녀석들 2년전만해도 encrypt 함수가 리눅스랑 스펙이 틀려서 어딘가 패치를 했어야 했다. 지금은 꽤나 대중적인 녀석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번까지는 참아보자.
문제는 레드햇이 더이상 지원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데… KLDP에서 데비안으로 검색되는 녀석들은 몽땅 뒤져서 읽었다. 걸린시간은 하루종일. 눈이 아프다.
젠투라던가 하는 녀석이 꽤 맘에 들었지만, 결국은 데비안을 쓰기로 했다.
몇달간 스택에 쌓여있었는데, 꺼낸지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꽤 빨리읽히는 책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라!” 로 알려진 애덤스미스. 그가 사실은 “경제학은 도덕철학이다” 라는 말에 더 무게를 뒀다고 하는 내용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의 타당성에 진심으로 신중을 기하는 것이… 덕의 진정한 정수이다. - 애덤스미스 도덕감정론
얼마전에 내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 정당한 행동일까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딱 열흘전이네..) 이익을 취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것이 너무 현학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좀 웃기긴 하지만 - 암튼 고민했었다.
그저께까지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읽었다. 90학번인 내가 기억하는 물리학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까지.
고양이는 확률로써만 존재한다, 고 하는 것이었는데.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앞쪽 절반은 아는 이야기이고, 뒤쪽 절반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초끈이론”이라는 특집기사가 월간뉴튼에 실렸을 때에 대강 읽어버렸던 때문인지, 끈이론이라고 하면 뭔가 이상한 말로만 들린다.
“쿼런틴“을 읽으면서 가물가물했던 내용들을 앞쪽 절반에서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이상한 비유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다는 점. 가능한한 정확한 비유를 사용했다.
재미삼아 건드려본 파이선은 꽤 쓸만했었다. “이만용”씨의 글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을 고려한 최종 예상치는 초당 1500개였으나 이를 감당할 상용 제품을 쓰기에는 예산이 허락치 않았다. 대안은 오픈소스 LDAP 소프트웨어인 OpenLDAP였다. 그러나 며칠 간의 고통스런 튜닝과 테스트 결과 OpenLDAP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최대값은 초당 200개 안팎이라는 결론이었다. 고객에게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온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
파이썬은 ‘개발자의 여유’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밀양박씨말고도 박씨가 있는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연암박지원은 반남박씨다. 반남이나 밀양박씨는 6박 혹은 8박이라고 해서 잘나가던 집안에 속한다. 춘천박씨는? 우린 잘 못나간 박씨에 속한다. 하기야 춘천같은 산골에서 서울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못나간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고, 고려때는 잘나갔다.
박항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공부를 잘하시고, 승진도 잘하시고, 또 인품도 뛰어나셨다, 고한다. 하지만 유훈으로,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아!” 라고 말씀하셔서리.. 조선조에는 후손들이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지 않았다” 고한다. 못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설을 맞아 옛날이야기 하나.
다동에서 김치말이밥을 먹을 때, 이렇게 오래된 집들은 조선말부터 있었겠지 생각했었다.
전에 비변사등록에서 발견한 “거추리”라는 이름에 잠깐동안 흥미를 느껴서 글을 올렸었다. 우리나라가, 국사연구를 굉장히 많이 한다고 알고있지만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결국은 박사논문꺼리가 없는 쪽에는 연구를 하지 않고있다. 아마 앞으로 학위꺼리가 없어지면 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연구하시겠지.
특히나 아쉬운 것은 음양사 따위의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에도 시대의 상세한 지도”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을 때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같은 소설에서 약간씩 보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한양의 도로망같은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은 찾기 힘들다.
웃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100원을 번다면, 다른 누군가는 100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있다. 혹은 100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내가 담배한대를 피우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던 “담배한개비”라는 재화를 소멸시켜버림으로써 다른 골초가 담배피울 수 도 있었던 기회를 내가 뺐어온 것일까? 아니면, 담배회사로 하여금 담배농가로부터 담뱃잎을 구매하도록 해서, 경제가 순환되도록 하여, 결국은 다른 골초가 구매능력을 가지도록 도와준 것일까.
한남동 뉴욕스테이크에서 덜익힌 소고기를 먹는 것이나, 인사동에서 랍스터를 먹는 것은 어떨까.
몇번이나 일본어로 보았던 영화를 더빙으로 보니까 어딘가 어색해보였다. “아타시와 겡끼데쓰” 는 결국 더빙하지 않았네.. 여기서, “와타시” 대신 쓰이는 “아타시”는 여자애들이 쓰는 말. 어딘가 미소녀게임에 등장하는 귀여운 아이가 떠오른다.
산에 살고있던 불할아범 (더빙은 불영감)이 부르던 노래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靑い珊瑚礁) 이렇게 신나는 노래를 불할아범은 전형적인 뽕짝으로 만들어버렸다.
“아~ 나의 사랑은 남쪽의 바람을 타고 달려요오~”
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정확했다.!
あ~ 私の 戀は 南の 風に 乘って 走るわ 아~ 나의 사랑은 남쪽의 바람을 타고 달려요.
게임제작이 주는 줄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상은 역시 공상이었나.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그쪽의 이야기를 올리는 분이 계셨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엔지니어의 일상은 변한것이 없다. 10년전 윈도우즈 3.1이 나왔으니 그리로 포팅해야 한다고 윈도우즈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와중에도 이미 잡지에는 광고가 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이기는 것은 사장!
지금도 사장님은 잘 지내시는 것 같았는데..
그때 회사에서 먹고자던 사람들.. 지금은, 몇억씩 빚을 지고 일상이 불가능해져버린 사람도 있고, (내 빚은 얼마 안된다..).. 또는 보유주식의 시가총액이 몇천억이라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지금도 계속 그때 하던 짓을 하는 (나도 포함된다.
시작한 일을 끝맺지 못하고 떠나거나, 조금만 늘어져도 상대적으로 큰 지루함을 느낄 때, 나의 끈기에 대해서 불만스러워지곤 했다. 스쿼시와 요가를 거쳐 이번에는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과연 저 지루한 러닝머신위에서 내가 며칠이나 더 버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20분을 채울 때마다 나에게도 혹시나 지구력이란 것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요가는 집에서 혼자할 정도가 되었으니, 이번에는 필라테스를 해보려했는데, 분당에서만 한다고 해서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알고보니 “필라티즈”라는 이름으로 신사동에서 배울 수 있었네. 어쩐다.
참장공도 배우고 싶었는데 불광동에서 “참장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제일 유명하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