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느낌

또렷하게 그때 일이 떠오른다

박제권
누군가의 글에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글을 보자마자, 즉각 가슴이 딱딱해지며 화가 났다. 십삼년전(!) 어떤 자리에서 내가 그 단어를 꺼냈을 때, 그는 그런 허접한 개념을 말하냐며 나를 강하게 비난했었다. 다른 회사 사람들도 있는 자리였기에 모멸감까지도 느꼈었다. 지금 같으면 다르게 반응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있었고, 나중에 다른회사로 옮기고 난후에도 몇번이나 그를 만났으며, 친하게 지냈고, 굳이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배울 점이 많은 존경하는 직장 선배였다. 그간 이 일은 직장에서의 불쾌했던,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만 기억했을 뿐, 거기에 이런 분노가 달려있다는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6개월간의 칩거

박제권
법인 대표에서 아무데도 못가는 환자로 순식간에 추락. 이어지는 6개월간의 강제적인 칩거. 멀리 장안동까지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 많이 외롭지는 않음. 어쩐지 내가 살고있는 세상이, 사실은 장한평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연극무대 같은 것이고,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출연 준비를 하고 잠시 무대에 나타나는 건 아닌가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 가끔 비참함을 느낀다. 내가 스스로 물건을 팔아본 적이 없으며,

빠이 기억

박제권
사실 그날은 카메라가 손에 없었다. 길을 걷는데, 오다가다 몇번 본 것 같은 동네 총각이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 했다. 그는 내가 카오소이라는걸 먹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뒤에 탔더니, 마을에서 좀 떨어진 국수 노점상에 끌고간다. 고소한 맛이 강했고, 그간 먹었던 태국 국수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카오소이 맛있구나. 셀렉남과는 다르구나. 기억해둘까나. 정말 맛있다고 웃고 떠들며 여행수다를 떠는데, 어딘가를 가리키며 가봤냐고 했다. 나는 빠이 온천에도 가봤다구요. 왓 프라타어찌구도 가봤구요. 그는 웃으며, 또 뒤에 타란다. 이번에는 다운타운에서 떨어진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 데리고 갔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날

박제권
어릴 때, 이런 골목은 흙바닥이었다. 애들이 놀고 있고, 가게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있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 골목으로 어느날 자가용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게 뭔지 설명하기는 힘든 나이였다.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머리를 들이미는 것들이 싫었다. 횡단보도에 머리를 들이미는 차들도 싫고, 그 횡단보도에서 깜빡이는 파란불을 보며 뛰어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 스무살 무렵에 피피에 갔었다. 그게 내 추억중에 하나였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십년넘게 꿈만 꾸다가, 파티션과 야근이 싫어졌을 때, 다시 피피에 갔다.

척 베리

박제권
이분이 척베리 아저씨 백투더퓨처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중에 하나가 바로 이 기타 연주 장면이었다. 중간에 손을 다친 기타리스트가 누군가한테 전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분 이름이 “척 베리”. 그때는 걍 넘어갔었는데, 아흑 이렇게 신나게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구나. 알고보니 아주 유명한 아저씨. Berry, Chuck - Johnny B. Goode (Live 1958) 기타강좌에도 등장하신다 http://www.youtube.com/watch?v=da_xxvzxDYQ 암튼 멋져. 척베리아저씨.

언어 학습

박제권
요즘 준비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닥치는 질문들. “아빠. ‘자료’가 뭐예요?” “아빠. ‘내몰리는’게 뭐예요?” “엄마. ‘부랴부랴’가 뭐예요?”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얘기가… 길어진다. 초딩1년이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답을 해야한다는 부분이 핵심. “엄마, 인상에 남는게 뭐예요? 인상은 기분나쁜거아녜요?” “에… 그건 인상쓰는거고, 인상에 남는건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신기하거나 재미있는거지” 동음이의어도 한번만 설명하면 이해한다,는 부분이 좀 신기하다. 당연하지만, 신기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저 학습력으로 영어공부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새해를 맞는 글

박제권
새해를 맞이하면서 손석희의 지각인생이란 글을 읽었다. 감동먹었다. 난, 일정에 쫓기는 삼성동의 삶이 너무 싫어 어떻게든 느리게 살려고 애썼다. (그래서 사무실도 강북으로 고집하고 있다…. ?) 그리고, 어느만큼 성공하기도 했다. 블로그 10년차를 맞이하며 저 글을 펌질해두는 것으로 새해 포스팅을 대신하려했으나, 몇마디만 더 적자면… 마흔이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아직 하고 싶은 것은 있다. 그래서 은퇴자처럼 한갓지던 생활은 잠시 접어두고, 조금만 더 달려보기로 했다.

여행기들

박제권
제가 쓴 여행기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게으름을 부리면서 썼네요. 반면 즐겨찾는 블로거인 아게라텀님의 여행기에서는 일정을 이렇게 표현하셨군요. 여행기도 정성입니다요. 몇몇 개발자나 업체들이 시도했었던, 여행기 전용 블로그 도구들이 떠오릅니다만, 다들 불편했었습니다. 결국 수동편집만이 살길인걸까요? 마크다운처럼 여행기를 작성할 때도 편리하고 깔끔한 표현이 가능한 방법이 있지않을까요?

출근하며 걷는 길

박제권
새로 얻은 사무실은 인왕산 중턱의 배화여대안에 있습니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내리면 더 빨리 올 수 있지만, 종로2가에서 내립니다. 4.34km, 49분33초 걸리는 구간. 종로2가 YMCA에서 인왕산 중턱 배화여대까지. 장사 준비중인 인사동 가게들을 지나면, 덕성여고 앞. 여름에는 나무들이 볼만한데, 지금은 다 벗음. 정독도서관 앞을 지나 삼청동 골목을 통과한 후, 경복궁 담길. 경복궁을 지날때면 수문장 교대식과 마주치곤 합니다. 거기서 또 얼마간 걸으면, 인왕산 초입에 사무실. 하루에 두시간씩은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심먹고 동네산책을 안하면 하루 한시간도 안걷는거였네요.

어느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박제권
영문으로된 글을 읽다가, 번역해 둠. 어느 엄마가 딸에게 보낸 편지: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엄마가 나이든 사람이 되면, 네가 날 보살펴 줄 수 있겠니. 그때는 무엇보다, 엄마를 무시하지 않아주면 좋겠구나. 가령 우리가 얘기를 나누다가, 했던 말을 천번쯤이나 반복한다해도, “방금전에 했던 얘기잖아” 라며 말을 막기보다는, 그냥 들어주면 좋겠어. 네가 아주 어릴때, 밤마다 같은 동화책을 읽어주던 그때를 떠올려주며 말이지. 내가 목욕을 싫어하게되어도, 화를 내거나 창피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핑계를 대며 도망다니는 작은 여자아이를 쫒아다니던 엄마를 기억하면서 말야.

이름이 뭐지 / 그건 왜 묻죠?

박제권
이름이 뭐지 / 그건 왜 묻죠? 2002年12月21日 이름이 뭐지 / 그건 왜 묻죠? 난 알고 있어. 이름이 수리진이지? 어떻게 알았죠? /꿈 속에서 만나자. 꿈 속에서 못 봤어요. / 안잤으니깐. 기필코 만나게 될거야. 오늘은 좀 유별나군 뭐가 유별나죠? / 더욱… 예뻐보여 뭘 원하는 거죠? / 친구로 사귀고 싶어. 이유가 뭐죠? 잘봐 / 시계를 왜 보죠? 1분만 /1분 됐어요 며칠이지? / 16일이요 16일..4월 16일. 1960년 4월 16일 우린 1분간 같이 있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주인의식 vs. 프로의식

박제권
오래전에, “평사원일지라도 내가 회사의 주인이다”, 라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에도 다큐멘터리같은 것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더니 결국은 더 큰 가게의 주인이 되어있더라, 따위의 간증도 보았다.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랑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주인도 아닌데, 주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무언가 이상하다. 이런 묘한 뒤틀림을 느낀 이후로는 생각없이 따르려고 해도 계속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걸리적 거리곤 했다. 이때, 형님께서 한마디 던져주셨다. “난 우리 애들한테 프로의식을 가지라고 하지.

멀티 태스킹이 아니다

박제권
오늘 저녁을 위해 두 권의 책을 사왔다. 먼저 전직 서점 직원이 쓴 추리 소설을 읽으며, 간혹 맥이 끊기기는 해도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내가 어떤 생각을 또 했는가 하면. 이 책에 이어나온 세권짜리 시리즈도 사야하는걸까, 동부간선 갓 길에서 빈 페트병에 소변을 봐야했던 에피소드를 단편 소설로 만들면 어떨까, 건대 맞은 편 서점에서 실물을 확인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세권짜리 단편집 - 너무 두꺼워서 고민하긴 했지만 내용을 슬쩍 훑어보자마자 구매욕이 발생해버린 단편집 - 은 구간 할인이 시작되면 사야겠다,

해피 크리스마스

박제권
얼마전부터 사달라고 조르던 코코몽 불도저. 불도저,방패,미니카,타임머신의 네가지 모양으로 조립이 가능하며, 영호가 가장 좋아하는 “톱니바퀴”가 주된 아이템입니다. 아주 좋아하는데, 자기전이면 네가지 모양을 차례로 조립해달라고 졸라서 피곤해요. 나한테 가장 부족한 재능인 색감과 디자인 감각이, 분명 이 녀석에게도 부족하리라… 어차피 부족할테니, 한번이라도 더 그려봐야 나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다중지능의 이론이 원래 이런식으로 적용해야 하는 거라던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Faber Castell 을 질러줬습니다. 일단은 좋아하니까 성공. 파리바게트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녀석. 요즘은 빵집가기가 두렵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버전으로 하나 사왔습니다.

안국동

박제권
주말을 맞이하야, 성격이 왕 활발한 조카가 원정오는 바람에 작업 불가능. 정독도서관에 가는 마누라를 따라 길을 나섰다. 도서관 앞 까페 연두에서 코딩. 옆자리에 미쿡에서 방금 온 것처럼 혀를 굴려주면서 열심히 작업중인 총각이 있었음. 귀를 닫고 작업해야 했다. 연두… 커피는 맛있는데 손님들이 시끄러워서 작업장 목록에서 지웠다. 대신 두번째로 찾은 곰초밥. 오늘도 성공. 초밥이 왕창 맛있다…기 보다는, 아저씨 세심함이 느껴지는 집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훌륭!) 집에 오는 길. 마누라가 뭔가 끌리는 것을 느꼈는지, 길가 어느 옷가게에 들어갔다.

처음 가보는 곳 집착 병

박제권
새로운 걸 무지하게 좋아하는 인간이다. 외국 여행을 할 때,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저걸 타면 또 어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까 궁금해했었다.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혹은 서울 시내 한귀퉁이에서도, 버스 옆의 이름들을 바라보며, 저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한다. 서울의 동쪽끝 일자산에는 나무가 엄청많고, 북촌보다 더 정이 가는 골목길이 사직동에 있고, 부자마을 성북동의 맞은 편 좁은 골목길에는 배추를 기르는 할머니가 살고 있다. 요즘도 나는 처음보는 동네에 일없이 내려 한참동안 골목을 헤매곤 한다. 그게, 삶의 의미라도 되는 것처럼.

랭고리얼

박제권
제목을 알 수 없는, 몇몇 장면들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화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 어느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지만, 공항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요할 뿐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막막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영화 줄거리 비행기 공항 세계 승객 낯선” 으로 구글링해보니, “http://k.daum.net/qna/view.html?qid=2doH2&q=the%20langoliers" .. 이것인가 싶다. 동영상을 구해서 보았다. 맞아. 바로 이영화야. B급 과학영화, 엔딩쯤에 가서야, 전에 이녀석을 볼때도 마지막에 실망했었구나, 하는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