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게임과 숙제를 끝내고 거실로 나왔다. 나보다 더 바쁜 것 같다.
낮에 발견하고 보여주려던 TED 동영상을 보여줬다. 다 보고나서 타인의 온몸을 아바타처럼 움직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는 “알 수 없는 유투브 알고리즘으로” 다시 보게된 동영상을 이야기했는데, 그건 저글링 세계 1위 아저씨.
기초적인 것 몇가지는 따라할 수 있겠는데, 어떤 것은 꽤 힘들겠다는데 둘다 동의함.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걸 가르치고, 동영상을 보도록 가이드 해주는 것 같다. 덕분에 밤까지 저글링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부터 그랬는지 어느 시기부터 이러는건지 모르겠다. 난 항상 걱정을 한다.
요전에도 쇼파에 기대 편히 쉬려는데, 마음속에서 ‘일해야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일 못한다는 평가를 들으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어서 일해’ 라는 재촉이었다.
잠깐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어깨에 힘을 풀고 쇼파에 주저 앉았었다. 목이랑 가슴이랑 한군데씩 긴장을 풀며 쉬려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녀석들이 하나씩 찾아왔다. 내가 지금 다치거나하면 어쩌지? 만약에 가족중에 누가 아프면 어쩌지? 그렇게 이 녀석 저 녀석들이 쇼파위에 앉아있는 내게 차례로 다가왔다.
그 중 한 장에게 “오늘”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려 고민했다.
한 장에는 내가 갇혀 지내는 동네가 밋밋한 햇살을 받고 있다. 다른 한 장은 아내가 찍어주었는데, 구도가 약간 다르고 내 모습도 들어가 있다. 그녀가 하늘을 잔뜩 넣은 것은, 내가 더 자유로와지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런데, 사진으로 남은 그녀의 시야속엔, 내 모습 대신 낯선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있다.
어쨌든, “오늘”이라는 이름은 아내의 작품에게 붙여주었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되면, 당신의 LP들을 이쁘게 들을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했었다.
다행히 이번엔 조금 더 넓은 집이다. 중2가 되는 아이에게도 자기 방과 침대를 줄 수 있었다.
턴테이블 가격에는 끝이없었지만, 들어본 브랜드 중에 제일 저렴한 녀석으로 질렀다. 요즘엔 턴테이블도 블루투스가 되는구나.
해드는 오후에 낡은 판을 올리고,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함께 지른 야마하 사운드바. 입출력 단자들도 적당하고, DLNA 도 지원한다. 아파트에서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상자안에서 자고 있던 CD들을 하나씩 깨워서 시놀로지(NAS)에 올리고 있다.
아침부터 우울함 속에 파묻혀 있던 지지난 수요일 아침에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나의 우울은 좋아지지 않겠구나. 더 늦기전에 자기 계발서 따위에 나오는, 혹은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며 실습했던, 생각바꾸기라는 것을 실천해야만 하겠구나.
방금 산보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도 멀쩡히 생긴 사람이 쌍시옷을 뱉으며 곁을 지나쳤다. 배려와 예의라는 것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탄하며 짜증을 낼 뻔했다. 다행히 그에 대한 화를 집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인정하기로 하자. 이 세상에 그런 자들이 있음을.
드디어 내가 만든 결제 기능이 붙었다.
구 버전을 위한 대응 기능, 다른 서버들과 연동때문에 배포 자체가 한달이 넘게 걸렸다.
어제 꿈에는 보스가 등장해서 ‘롤백해야겠는데요’ 라고 말했다. 화내는 동료들을 달래고, 집 옆 개울에 가서 한참이나 산책을 하다가 깼다.
어쨌든 꿈과 달리 지금은 모두 안정화 단계. 결제는 다시는 안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샌가 결제 모듈을 만들고 있다. 그래도, 더 긴장하지도 않는다.
꿈에 나온 집옆의 개울이 참 맑았다.
거의 매일 산보를 한다. 산보할 때마다 위파사나 명상의 한가지인 ‘대상없는 주시’를 한다.
때로 주시가 아닌 백일몽에 빠져서 걷기도 한다. 실컷 상상을 하고나서야 아 잡생각에 빠졌구나 하며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 잡생각의 내용을 보면 대개는 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우쭐대는 내용이다.
어릴 때부터 확인한 결과 상상을 하려면 ‘내가 진짜로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해야한다. ‘누군가가 나를 부러워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 건강만 상할 뿐이다.
어쨌든, 나에게 그런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그런 나를 잘 쓰다듬어주려고 한다.
오늘도 아들과 둘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 먹이기, 숙제, 이닦기까지 해결하고 재우기 미션을 수행하는데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라는 문제를 주심.
아들아… 그건 나도 잘 모른단다.
가끔 잠자리에서 엄마한테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는데, 나한테 직접 물어오니 뭐라도 얘기는 해야했다.
“아들, 얼마 전에 이빨하나 빠진 적이 있었지? 그거 빼기 전에 며칠동안 계속 치과 갈 걱정만 했었지? 그리고는 어이없게 쑥빠져서 허탈하게 웃었었지? 걱정할 때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기억하니? 빠지고 나서는 어떤 느낌이었지? 빠질 당시에 느낌을 보면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였지?
그간 노출훈련과 마음챙김을 하면서 희미하게 보이던 근본적인 문제가 눈앞에 드러났다. 내가 알게된 핵심은,
‘그것들에 대한 나의 태도가 그 다음을 결정한다’
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태도를 취하면 증상은 점점 커지고,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핵심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간단하게 ‘이건 신체와 정신에 오는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구나’ 라고 안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나고, 두려움이 몰려온다.
원인은 아마도
처음 당했을 때에 원인도 몰랐고, 해소 방법도 몰랐기에 충격이 컸다.
아내는 장모님, 처형과 함께 가고시마에 다녀왔다. 모래찜질을 했고 영주가문이 남긴 사쿠라지마가 보인다는 정원을 보고 왔다. 힘든 기간 동안 (지금도 내 덕분에 힘들겠지만) 잘 버텨주었다. 고마운 마음 뿐이다. 언젠가 다시 함께 놀러다니게 되면 정말 좋겠다.
아이는 알아서 시간을 쓰도록 했더니 종일 게임을 했다. 두 달 정도 그대로 보기만 하다가 3주 전부터는 시간을 정해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자유시간을 스스로 잘 배분해서 쓴다는 것은 아직은 힘든 일일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한테도 힘든 일이다.
새해 첫 외식은 아차산 닭국수라는 가게의 닭반마리 였다. 옆자리에 아저씨 아줌마들 5인이 앉더니 식탁위의 작은 접시를 들고는 꽹가리 처럼 쳤다. 요즘 사물놀이를 배우시는 걸까. 아무튼 한동안 노려보아 드렸지만, 멈추지 않고 돌아가면서 쳤다. 다른 식탁의 아줌마 한분이 시끄럽네 라고 한마디 했고, 종업원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잠시후 그들만의 공연은 끝났지만, 죄송하다는 말 같은 건 없었다.
예의 같은 건 어디에 숨어있을까. 멀리까지 가는 버스의 짧은 구간을 이용하다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아이와, 친구와, 가족과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자들을 매일 볼 수 있다.
식당으로 가는 길, 아이가 너무나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손가락에 가시같은게 박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한데 자꾸 신경이 쓰여요.”
“그럴 때는 너무 예민하게 신경쓰지 말고 무시하는 연습을 해볼까.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되면 어쩌죠? 영원히 신경 쓰이면, 어쩌죠?”
“손을 앞뒤로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일 지도 몰라. 정말 안될 것 같지만, 해보면 너무 쉬운 일도 있지.”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휴대폰으로 게임하며 방심하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까 신경쓰던 손가락에 가시 같은 거, 계속 신경쓰고 있었어?
동묘는 너무 붐벼서 걸을 수가 없었다. 돌아올까 하다가 다시한번 버스를 탔다.
여기서 동대문이 얼마나 멀까 궁금했는데,
곧바로 동대문이 나타났다. 조만간 낙산에도 다시 가봐야지.
인사동 앞에서 내렸다. 이 길은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이 좁은 골목도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교보로 향하는 발을 멈출수 없었다. 몇번이나 광화문에 다시 오는 날을 그렸었다.
교보문고다.
이곳에 다시 설 수 있을까, 몇번이나 우울했었다. 두번 다시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에 가볼 수 없을 것 같았다.
2014년 5월. 그때부터 2년이 넘은 지금도 나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지하철역으로 한정거장도 못되는 구역. 나는 이걸 농담삼아 ‘결계’라고 부른다. 다행히, 그 결계 안쪽에 병원이 하나 생겼고, 내가 원하던 치료법을 시행하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치료를 시작한지 두달가량. 어쩌면 이 어려움이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결계 확장 기념 사진.
어제는 2년 5개월만에 동네 까페를 벗어나, 저곳에서 작업을 했다. 마누라와 아이도 와서 근처에서 외식도 했고.
결계가 확장된 것도 크게 기뻐할 일이지만 - 조금만 더 확장하면 건대입구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다 - 그보다는 병이 발생했던 원인과 대처방법을 확인한 것이 더 기쁘다.
넷플릭스에는 잔인하거나 긴장감 넘치는 시리즈물들이 많다. SUITS 같은 것은 설렁설렁 볼 수 있지만, 전에 봤던 보스턴 리갈하고 다를 게 없다. 차라리 유머가 넘쳐흐르던 리걸하이를 다시보는게 낫겠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내가 선택한 것은 ‘가마쿠라 맛있는 쌀집’. 도쿄 근처의 옛풍경이 남아있는 도시 가마쿠라의 ‘쌀가게’와 그 가게의 가족들간에 벌어지는 잔잔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아래는 식사준비하는 와중에, 며느리와 딸이 ‘푸른 산호초’를 흥겹게 부르는 장면이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사실 파트너를 보고있어도 마찬가지) 조용하고 편안하게 잠이 온다.
시간대가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이력서도 통과했고, 면접도 통과했고, 그저께, 설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모르는 곳에 무작정 들이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긴장했었다.
다른 시간대의 회사에 리모트로 일하는 것은 처음인데, 내가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 그들에겐 잠자야하는 시간이다.
일단 여기 시간으로 오전, 거기는 오후인 시간에 미팅을 끝내고 나면, 뭐랄까.. 아무도 말걸지 않는 조용한… 나만의 코딩이 시작된다.
목표를 한가지로 압축한 결과, 그리고, 일어나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 결과, 잠들기에 성공했다. 저녁 열두시나 열시에 잠이 들기도 했다.
일주일째 제대로 잠을 자고 보니, 그렇게 매달렸던 밤이라는 시간은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져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스윽하고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지게 해도 되는 것인지,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는 산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산보가 ‘일본식한자’ 이니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어 찾아보았다.
우선은 고려 후기의 문신 한종유가 저자도에 대해 읊은 한시. 단삼단모요지당(單衫短帽繞池塘) 홑적삼 짧은 갓으로 연못가에 앉으니 격안수양송만량(隔岸垂楊送晩?) 언덕 저 건너 수양버들 석양 녘 서늘함 불어 보내네 산보귀래산월상(散步歸來山月上) 산보하고 돌아오니 달이 떠올라 장두유습로하향(杖頭猶濕露荷香) 지팡이 머리엔 아직도 연꽃향기 남아 있구나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저자도는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한강의 섬이다. 한강이 범람할 때마다 압구정동 일대가 물에 잠겨서, 저자도의 흙을 가져다가 매립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다.
내가 이런 뻔한 말을 하게되는구나. 나이드니 어쩔 수 없다.
체력이 중요하다. 중간에 쓰러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예전에 동료들을 보면 완전히 몰입해서 작업하고, 밤샘도 드물지 않았다.
결국 일좀 능숙해졌다 싶은 40초반에 픽픽 쓰러져버린다. 나도 마찬가지고.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진짜 늦은 거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일을 해야한다. 나름 생활방식을 바꾸려고 하는데, 잘 되지는 않고, 매일매일 하기로 했지만 작심삼일.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30분짜리 이완연습 (위빠싸나) 7mwc 앱으로 운동 30분이상 산보 이 정도도 안하고 살았다는 거.
2004년 알게된 여행정보 사이트 2004-05-02-십년만의-태국-1
나중에 빠이여행 가서는 사이트 주인장하고 친해지고.. 2004-09-26-사진들-빠이
결국 일을 함께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이제 사이트 문을 닫는 작업을 도와드렸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했던, 주어진 관계가 아닌, 내가 선택했던 관계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