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번 깨어나서 꿈인지 생신지 모를 격렬한 경험을 하고서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는 열두 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눈을 떴다. 하루키식으로 꼼꼼하게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온몸을 씻었다. 식당에서 대강 밥을 먹고는 집을 나섰다. ‘오이’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썽태우 터미널이 있는 딸랏쏫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썽태우를 타고서 카론 비치에 갔다. 방을 나서기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챙겼었다. MD는 깜빡했고, 카메라는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
멀리 있는 이들은 이곳의 인간들이 계속해서 슬픔에 젖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정홍보처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라 함은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신이 피곤해지는 종류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젠가 그젠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도착했다. 헌데, 날아오기 전에 복장통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덕분에 “알록달록 봉사단”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이쪽에서 얼핏본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를 보고서 저거다, 저거로 통일하자, 라고 결심했나보다. 이런 때 입기에는 기막히게 딱 맞는 옷일 것 같긴 하다.
좋아. 입을 수 있게 해주자. 서울에 국정홍보처 모 과장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안받는다. 전화를 안받길래, 동절기?
어제 사진을 받아서 프린트했던 실종자 한분이 다행히도 다른 쪽으로 여행루트를 바꾸고, 살아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방에 소식을 알렸다. 이미지를 바꾸고, 편집하고 프린트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살아있다니 많이 기뻤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저 방콕에서 항공권을 구하고 있는 줄로만 아신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함에도, 크게 걱정하고 계실까봐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방금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나간 것 같다. 사정을 설명했으니 알아서 처리해주겠지만 그래도, 잘 믿음이 안간다.
푸켓은 고급휴양지, 하루에 160만원이나 하는 숙소도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개발되어왔고,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기반시설이 꽤나 잘되어있는 편이다. 병원도 외국인들만이 드나드는 꽤 비싼 병원도 있다. 전에 발목에 종기가 났을 때, 나도 이용한 적이 있는 “방콕-푸켓 병원”이 외국인들을 위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들 모두 영어를 굉장히 알아듣기 쉽게 발음해서 기분좋았던 그 병원. 내 발목의 종기를 수술했던 응급실에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응급실은, 난, 다시는 가고싶지 않아졌다.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하루를 지내고나니, 왜 의사들이 수술중에 농담따먹기를 하고,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지 알게되었다.
그제는 극장에서 “The Incredibles”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80밧). 꽤 볼만했습니다. 어제는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하고 디북이란 레스토랑에서 훈제연어를 먹었습니다. (스케일링 + 폴리싱 = 600밧)
오늘은 25밧짜리 버스를 타고 카론 비치에 가서 눕는 의자를 빌렸습니다. (100밧) 그리고.. 코코넛을 먹었습니다(30밧).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속을 긁어먹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만 놀고 있으면, 바보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기는 디북이라는 레스토랑입니다. 프랑스음식과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두가지 종류 모두 꽤 잘한다는 소문이 있는 집입니다.
이제는 태국말이 조금씩 들린다. 정확하게 들리는 단어도 아주 조금은 있고, 심지어 문맥과 느낌만으로 대강 무슨말인지 알아듣는다. 하지만, 가지고 온 태국어교본은 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석달이상 머물면서 왜 태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나에겐 지금 아는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은 배우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할 때는 우리말로 이야기하다가 바로 옆의 태국사람들과는 태국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느껴지는 어색함,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다는 느낌.
아침에 눈을 뜨면서 ‘아, 또 지구최후의 날이었던가’ 라고 생각했다. 내 생전에 오긴 올건가, 그날이. 어쨌든, 최후의 날을 맞아 지구의 표면 일부를 떼어낸 후 이를 우주로 들어올렸다. 그런 힘겹고 상상 안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타운이 꿈의 배경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니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공기가 희박할 것 같아. 그걸 느끼는 순간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도대체 나와 함께 있던 그 인간들은 누구를 상징하고, 삭막한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을같던 그 동네는 어디를 상징하는가. 태국의 일반적인 인간들이 살아가는 판자집을 상징하는 것도 같지만, 잘 모르겠다.
언제나 머리 속 조언자의 의견을 따랐다. 그가 그만하라고 하면 나도 하기 싫어졌고, 그가 하라고 하면 나도 하고 싶어졌었다. 회사를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언제나 그렇게 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반드시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내 기분이 우선이었다. 언제나.
소크라테스처럼, 보이지 않는 조언자를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고 뻥을 쳤지만, 사실은 기분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이쁜 행동이다 아니다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경우에 따라,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이야기도 된다. 별다른 합리적 근거가 없다면,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푸켓에 있을 때, 호기심에 찾아보았었다. 폴 니츠가 1950년에 작성하고, 이후 냉전시대에 전략교과서로 쓰였다는 문서 “NSC-68”. 이 정도는 되어야, 분석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써온 “사업계획서” 라던가, “업무분석 보고” 따위는 이 문서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말거나 일단 일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겠다.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었다.
There are three kinds of people, those who can count and those who can’t.
라는 문장을 어딘가에서 보았는데, 한번 보고나니까, 계속 눈에 띄였다.
쓸데없는 인간이, 내 여자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길래 한참을 싸우는 꿈을 꾸고 깨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잠을 청했는데, 이번에는 이런 꿈을 꾸었다.
끄라비 타운을 걸어가는데 발뒤꿈치를 얼룩덜룩한 뱀이 콱물었다. 겁도 나고, 귀찮기도 해서 빨리 떼어버리려 했다. 헌데, 가만히 보니 뱀이 나를 물고 있는 모양이 너무 필사적이었다. 마치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해보였다. 이봐.. 내 고기를 얻으려면, 따끔하지 않게, 몰래몰래 물었어야지. 독이 잘 퍼져나가게..
뭐, 동감같은 것을 하면서 쓰윽 쓰다듬어 주었더니, 껍질이 벗겨져 버렸다.
여기는 코시레라고 하는 푸켓의 가장 가난한 마을. 밤에는 사고가 나도 경찰이 오지 않는다. 마약과 범죄의 소굴. 양철로 만든 집과 판자로 만든 집, 그리고, 마약상으로 거부가 되었다가 잡혀들어간 사람이 만들어놓은 궁궐같은 집. 뭐 그런 것들이 있다. 사진은 양철집. 더운 날에는 뜨거운 양철지붕이 되겠다.
그리고, 바다가 양철집 바로 앞에 펼쳐져있다.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가는 까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거나, 혹은 한짝만 신고 있다. 한짝.
이 사진은, 한달동안 여행사 체험을 도와주신 미스코리아 뺨치는 아가씨.
지금 태국시각은 2004년 11월 5일 오전 6시 5분.
서울은 8시 5분. 다들 출근하시는 중이겠다.
뭐하다가 이 새벽에 일어났는가, 옆방에 사는 미스코리아 뺨치게 이쁜 아가씨가 방문을 두드려서라고 해도 믿을 사람은 없겠지? 믿거나 말거나다.
어쨌든. 오늘 새벽에는 해뜨기 전에 목성이랑 금성이 만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보면 더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맞나?.. 어쨌든 방금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들어왔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더 우울했다.
누가 그랬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여자는 가면을 쓰면 좋아하고 진심을 보여주면 싫어한다, 고 했었다.
맞는 말이다. 사실은 모든 인간관계는 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아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해주면 너무나도 좋아한다. 내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간에게는 아무도 호감을 주지 않는다.
웃기지 않나? 하루에 한번 식당에 들러서 인사해주는 것이 인정상 당연한 거라고 찾아오는 인간이나, 와도 귀찮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나, 둘다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저 길에서, 그저껜가.. 술을 먹고 하늘을 쳐다보고, 한참동안이나, 걸어다녔다.
마약을 한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즐기게 되었냐고, 누군가 물어보았다. 기분좋게..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어제는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굉장했다. 길을 걷다가, 벼락맞아 죽는 것 아닌가 싶은 정도로 근처에서 번쩍번쩍 했었다.
마음을 바라보는 일은.. 조금만 잘못하면, 언제라도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애(哀). 를 버려라.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인간들은, 자기가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겁내는 인간들이다. 당연한 자세로 거만떠는 인간들은 죽어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가만보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향한 불쌍한 시선을 모르는 것 같다.
어머님이 아프셨단다. 감기..
동생은 잘 있는 것 같다. 외투를 입는단다. 목도리는 아직 안하시고, 추워서.. 덥고 싶단다. 어제 삼계탕을 먹었다고 자랑했더니, 남대문에서 30년인가 40년인가 했다는 삼계탕을 그저께 먹었다고 자랑한다.
큰죠이님을 유비에 비유했더니, 귀도 길고, 팔도 길고.. 유비는 괴물이란다. 작가 고우영선생 덕분이다.
오늘 세시에는 아는 분이 메트로폴에서 마사지를 쏘기로 했다.
오늘 일곱시에는 드디어 불위를 걷는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요즘 이동네에서는 칼이나, 도끼로 피어씽을 하곤 한다. 채식주의자 축제다.
동생은 내일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가야한단다.
엔지니어들 사는 게 다들 그렇지만, 이 친구도 한동안 월급이 안나온다 어쩐다 말이 많았었다. 요즘에는 조금 괜찮아진 걸까. 어쩌면 아직 어려운 상태인 건지도 모르겠다.
돈이 모질라서 이제 그만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섬에 못가본게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쉴만큼 쉬었으니까. 라고. 이런 … 놀고먹는 친구같은 선배에게 기부금을 보내주었다. 어쩐지 아까 낮에 전화해주고 싶더라니. 신기하네.
이봐, 고마워. 잘쓰고, 조금만 더 놀다가 들어가께.
나 여기서 참 행복해.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슬슬, 마음을 준비하는 중이야.
굉장히 까무잡잡한 한국인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10년동안 모기를 죽이지 않은 사람을 알걸랑요. 네팔에서 배운거라는데.. 방에 모기가 들어오면 삼일동안 모기에게 나가달라고 부탁을하고, 그래도 안나가면 (모기향이 아닌) 향을 피웁니다. 그리고 나가달라고하면 나간다고 하걸랑요.
모기에게 섬세한 그 사람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착할 것인가. 감동적인 이야기다.
담배를 끊으면 모든게 맛있다. 터프한 아가씨와 쌀국수를 사먹고 나서 “바나나튀김”을 발견했다. 먹었다. .. 너무 맛있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먹었던 꿀밤과 비슷하게 맛있다. 달면서 뭉클한다. 뭉클 달콤 시큼. 아 맛있다.
자.. 이것은 찡쪽 대소동.
사진을 올리다가, 너무 많은 사진을 한페이지에 싣는 것 같아 분리한다.
옆방에 들었던 물리치료사 아가씨가 찡쪽을 무지하게 무서워한다. 헌데 꼭 그방에만 찡쪽들이 모여산다. 찡쪽을 발견한 아가씨를 위해서 용감하게 … 주인아저씨를 불러왔다.
천정의 찡쪽
빗자루 기술
쓸기 기술
파다닥
드디어 등장한 전기 충격기
전기 충격기의 사용장면은 너무 잔인해서 찍지않았다. 이건 결과물이다. 일종의 찡쪽삥(도마뱀구이)가 되었다.
언제나 금연을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에 2년동안 끊었었다. 하지만, 연초에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지금 빠이에서 다시 끊어본다. 만 이틀째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전에도 말했지만, 금연초기에는 항상 설사와 졸음이 따라온다. 설사는 금방 그쳤는데, 졸음은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낮에 굉장히 졸린 상태가 계속되곤 한다. 어쨌든 한숨 자고 나면 괜찮다. 게다가 여기서는 낮에 원래 졸립다.
목표설정을 잘못했거나, 너무 조급했거나
담배를, 잘못된 목표나, 혹은 너무나 조급했음의 상징으로 여기기로 했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조급함이었을 수 도 있어.
스피노자에 의하면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 본래의 법칙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즉, 외부로부터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을 말한다. 타자에게 영향을 받고 그것이 운동의 원인이 되는 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로크까지 왔다. 기억나나? 로크? 인식론. 그럴싸 하다.
오늘 아침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 빠이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빠이는 그렇지 않다.
라고 끄적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천국이다. 그냥 길을 서성이다가, 사람들을 보고, 나를 보려고 노력한다. 종로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